과거의 일반적 전쟁이라면 전선(戰線)의 움직임, 군수물자 생산과 보급의 원활함 등으로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라크전쟁처럼 무장 반군 진압과 후세인 제거 후 사회 안정화 작업이 목표라면 사정은 다르다. 9월 이라크 주둔 미 사령관이 워싱턴 의회로 돌아와 2008년 전쟁예산을 요청할 때 평가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라크 증파를 통한 정면승부를 지지한 백악관과 상황 악화를 걱정하는 민주당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주관과 정치적 이해를 배제한 ‘승리 확인법’이 그래서 필요하다. 나는 치안, 경제, 정치라는 전쟁의 3대 요소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첫째, 내전 단계로 들어선 이라크에서 전쟁의 목표는 무엇보다 치안 유지다. 테러집단의 미군 공격과 이슬람 종파 간 유혈충돌이 줄지 않는다면 전쟁의 성공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전투행위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의 수 변화는 중요한 기준이다. 총계뿐 아니라 지역별 수치도 따져봐야 어떤 대응전략이 테러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내전 피해를 줄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군 사망자 증가가 미국 내에선 정치적 논란을 부르지만 수치 증가만을 놓고 전쟁 성패를 말하기는 어렵다. 치열한 반군 진압작전 결과 미군 희생자가 늘더라도 이라크 치안상황이 개선된다면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둘째, 불행하게도 경제는 이제 현실적 지표가 못 된다. 폭력사태와 이라크인의 근무의지 부족은 경제 발전을 4년간 가로막았다. 올여름 치안 문제가 대폭 개선돼도 경제 사정은 2004, 2005년보다 좋아질 수 없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서 일자리 만들기에 주력해 왔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1월 10일 증파 결정을 내린 이후 그랬다. 그러나 뚜렷한 후속조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셋째, 이라크 국내 정치의 향배는 핵심 요소다. 이라크 정치인은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간 갈등의 골을 넘어 화해하고 타협할 수 있을까. 이라크 주둔 사령관은 “이라크 무장투쟁의 80%는 정치적인 것이며 군사적인 것은 20%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한다.
9월 말까지 이라크 정치 상황이 획기적으로 나아지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라크인은 그때도 상호 불신할 것이고, 의회의 예산처리 및 법 제정도 잘 봐줘야 초보적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기대하는 것은 ‘본질적인 국민의식 개조’ ‘정교한 법안처리 및 행정능력 배양’ 같은 큰 그림이 아니다. 최소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종파 간 타협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라크의 합의문화 부재는 기초적인 국가기반 조성을 가로막아 왔다.
석유수입을 공평분배하고, 후세인의 바트당 추종세력 가운데 하급 관리에게 국가 재건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다종파 도시인 키르쿠크의 분쟁을 공평하게 다룰 기반을 만들고, 극단적 무장세력을 정부에서 배제하고….
정교한 처방전은 몇 년씩 걸릴 사안이지만 최소한 ‘원칙’만큼은 책상 위에서도 만들 수 있다.
올해 9월 워싱턴은 이라크전쟁의 장래를 놓고 떠들썩할 것이다. 정확한 전쟁상태 진단은 쉽지 않다. 계량화를 통한 평가는 위험하고 왜곡의 소지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대 요소의 냉정한 계량화 분석은 정치인을 솔직하게 만들며 전쟁의 명분에 혼란을 겪는 미국인에게 판단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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