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상대 당 대통령 후보에 관한 문제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주는 게 옳다”면서 열린우리당 등 여권 의원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주문했다. 상대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충고였다. 그러면서 “여야 처지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충청도 출신 특유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말씨였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老)정치인의 무게 때문에 그 울림은 컸다.
▷이 부의장은 76세로 현직 국회의원 중 최고령이다. 정치 입문 47년에 4선(選) 의원이지만 총선과 지방선거에 13번 출마해 8번이나 낙선의 쓴맛을 보았다. 그러기에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라는 좌우명도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주위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권유했지만 그는 “훌륭한 후배들에게 길을 터 줘야 한다”면서 한 달 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제 마음까지 비운 셈이다.
▷이날 민주당 소속의 조순형 의원도 ‘바른 소리’를 쏟아 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기관에 대선후보 공약의 타당성을 조사해 보고하라고 한 것은 법치질서의 위기를 초래하는 위헌, 불법적 지시”라고 질타했다. 72세의 6선이란 관록도 있지만 2년 전 ‘탄핵 역풍’으로 ‘정치적 사망’에까지 이르렀다가 부활한 터라 그 역시 정치가 뭔지를 아는 사람이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의 티끌만 찾으려고 안달하는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두 원로 정객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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