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기습도발에 맞서 최후까지 영해를 사수한 젊은 호국혼들이여,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비장한 표정으로 추모사를 읽어 내려간다. 노 대통령은 분향과 헌화를 한 뒤 유족들의 손을 꼭 잡고 “대통령이기에 앞서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아드님들의 숭고한 희생을 조국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해마다 서해교전 추모일 무렵이면 혼자 상상해 보는 장면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9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에서 열린 서해교전 전사자 5주기 추모식에 올해도 참석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단 한번도 이 추모식에 참석한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은 같은 시간 청와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과 제13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에게 임명장을 줬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 챙겨야 할 중요 현안이 많고 추모식엔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했으니 자신은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런 대통령을 보는 군 장병과 국민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일부 유족들도 “지체 높은 분께서 바쁘실 텐데 그런 행사까지 다 챙길 수 있겠느냐”며 서운함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서해교전 전사 장병과 유족들에 대한 현 정부의 홀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3주기 추모식 때 당시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을 보내 추모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지난해 4주기 추모식 때는 서주석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을 시켜 추모 메시지 없이 분향과 헌화만 했다. 총리가 참석한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심지어 국방부 장관이 처음 참석한 게 3주기 추모식이었으니 더 말해 무얼 하랴. 청와대가 지난달 초 서해교전 유족을 처음 초청한 것은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군 최고통수권자가 조국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추모식장을 찾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다. 일각의 추측처럼 북한을 자극해 대북정책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인가, 아니면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인가. “다 북한 살리려고 그러는 것 아닌가….” 며칠 전 만난 한 유족의 한탄이 귓전을 계속 맴돈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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