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것은 히가시노의 소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추리 소설의 문법을 위반하면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위반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혼녀 야스코는 자신을 괴롭히는 전 남편 도미가시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야 할 범인과 살해 동기가 앞부분에 도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과정이 아니다. “왜?”라는 질문 역시 폐기되어야 한다. 야스코는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죽였고 이시가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범죄를 뒤집어쓴다.
그렇다면 질문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질문은 바로 ‘어떻게’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책은 주도면밀한 추리들이 직조되고 허물어지는 과정, 그 자체에 추리의 핵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히가시노는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의 방식임을 주지시킨다. 수학자 이시가미와 물리학자 유가와의 대결이 압축된 지점 역시 이곳이다. 수학에서 가장 난제로 꼽히는 ‘P≠NP’라는 반복되는 공식은 전환의 본질을 암시한다. 기하학으로 푸느냐, 수학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해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과 과정인 셈이다.
결국 사건의 전모는 야스코를 사모해 왔던 이시가미의 헌신으로 밝혀진다. 문제는 이시가미의 범죄가 야스코를 보호하기 위해 조작된 위장 살해라는 사실이다. 유가와도 수사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규명해 낼 수 없다. 자백을 받아들이는 것도 실패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 역시 실패이다. 히가시노는 이시가미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 불가능한 완벽한 가설을 축조하는 데 성공한다.
강유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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