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짝퉁’ 신데렐라

  • 입력 2007년 7월 16일 03시 00분


화가들을 인터뷰할 때 “작품 설명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화가는 “그냥 마음으로 느껴 달라”고 짧게 대답하기도 한다. 감성의 영역에 속해 있는 미술작품을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해 달라는 질문 자체가 우문(愚問)일 수 있다. 미술계 내부의 시스템도 흡사한 측면이 있다. 기업체 같으면 입사 때 온갖 증명서와 확인서를 요구하지만 미술계는 본인이 어떤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대충 그러려니 하고 믿어 준다. 예술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임명됐다가 학력 위조가 드러난 신정아 씨는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그는 1997년 한 미술관을 찾아가 큐레이터로 써 줄 것을 자청했다. 미국 캔자스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국내 미술관들은 영세하기 짝이 없고 큐레이터라는 직업 역시 저(低)임금에다 역할이 뚜렷이 정립돼 있지 않다. 미술관 측은 별 부담감 없이 채용했다. 미국에 학력을 조회해 보는 일 따위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의 출세 행진은 놀라웠다.

▷그는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기획했다는 전시회들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름이 알려졌고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다. 그가 미국 예일대에서 미술사(史)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자기 홍보를 한 것은 날개를 단 격이 됐다. 대학교수로 발탁되고 비엔날레 감독까지 된 것은 명문대 박사학위의 힘이 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가 국내에 거주하면서 미국 명문대 박사학위를 땄다는 사실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가 생각한 만큼 미술계가 어설프지는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거짓말로 한번 재미 본 사람이 자제하는 법은 좀처럼 없다. 그래서 더불어 발달하는 것이 거짓말을 식별해 내는 인간의 능력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노출된 세상에서 사람들을 장기간 속이기는 불가능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졌다. 하지만 교수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허술했던 체크시스템은 보완돼야 한다. 예술계도 씁쓸하지만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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