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腦’는 정서에 반응한다
사람의 정서를 관할하는 두뇌 속의 이 부분은 선거에 관한 한, 격렬하게 움직이는 게 일이다. 정서를 건드리는 정보가 입력되면 긍정적일 경우 증폭시키고 부정적일 때는 누그러뜨려 결국 내가 원하는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좋아하는 후보는 어떤 대답을 해도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다. 싫어하는 후보라면 어떤 대답도 납득되지 않고 용납될 수도 없다.
박근혜 씨 순서가 끝난 뒤 인터넷에는 “역시 솔직했다”는 지지자들과 “쇼를 했다”는 반대자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청문회를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명박 씨 청문회 뒤에도 비슷한 반응이다.
새로 드러난 충격적 사실이 많지 않았다는 이유가 크지만 설령 엄청난 내용이 나왔대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람의 이성을 관장하는 뇌 속의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은 선거 때면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번 청문회가 아무리 부실했대도 오히려 어떤 폭로에도 과히 놀라지 않게 만드는 ‘예방주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홀딱 반했다는 책 ‘정치적 뇌’ 역시 “선거를 결판 짓는 건 정서”라고 단언했다. 이성이 작동해야 먹히는 정책만으론 유권자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드루 웨스턴 에머리대 교수가 특수 자기공명영상장치로 유권자들의 뇌를 찍어 밝혀낸 과학적 사실이다.
2002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좌파적 성향과 정책을 의심받았을 때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는 정서적 반문으로 되레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너무나 솔직한 대통령은 지난해 임기 중간의 선거에 대해 언급하면서 “선거라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정책으로 심판받는 요소도 부분적으로는 국민을 속이는 게임”이라고 선거 전략을 노출했다. 유권자들은 그래도 후보의 진정성과 정책을 믿고 투표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치 선수’들은 이런 정서 맹점을 훤히 꿰뚫고 속여 왔다는 고백이다.
실은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1908년 ‘정치학에서의 인간 본성’이란 책을 쓴 행동주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월러스는 “선거를 좌우하는 건 충동과 본능”이라며 “대의민주주의를 실시한 지 41년이 됐지만 경험한 나라마다 실망이 크다”고 했을 정도다.
민주주의 의식(儀式)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거에 유권자의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당장 ‘내 돈’이 들어가진 않기 때문이다. 비용과 고통이 수반되는 일에는 이성을 관장하는 뇌 부분이 부리나케 움직인다. 물건 하나 사는 데도 비용과 고통이 수반되는 시장(市場)은 그래서 정부보다 합리적이다.
그래서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
말하는 데 돈 안 드는 민주주의는 정치꾼들에게 시장에 비해 ‘싸게 먹히는’ 제도다. 그들은 돈과 자녀, 분노와 질투, 정의와 불평등 같은 정서적 소재를 이성적으로 찾아내 유권자를 자극해 왔다. 그 덕에 집권한 정권이 포퓰리즘 정책을 마음 놓고 펼 수 있는 것도 내 돈 아닌 국민 세금을 쓰는 까닭이다. 평생 세금 한번 내 본 일 없는 ‘운동권’이 국민이 부담하는 비용과 고통을 알 리 없다.
대통령 선거까지 다섯 달 동안 또 어떤 ‘정서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다. 마음대로 뇌를 작동시킬 수는 없어도 네거티브 공세가 터질 때마다 ‘속이기 게임 작동 중!’을 알아채는 것도 평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선거가 최선의 후보를 뽑지는 못해도 정부를 응징하는 제도적 장치로는 최선이다. 정책 공약은 좋은 말만 나열돼 이성적 판단이 어렵다면 차라리 시장은 최대한으로, 정부는 최소한으로 만들 대통령을 뽑는 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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