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전율, 추리소설 20선]<14>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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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조차 가누기 어려울 만큼 무더운 여름밤. 소름을 오싹 돋게 하는 미스터리 소설에 몰입하다 얼핏 뒤돌아보니, 더위도 오들오들 떨면서 등 뒤에서 내가 읽는 소설을 함께 읽고 있더라. 여름은 미스터리 소설의 계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너스레를 떨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 어떤 미스터리 소설로도 더위를 쫓지 못했던 경험의 소유자라고 하자. 뭐라고 하겠는가. 등 뒤에서 떨고 있던 더위도 더위인지라, 여전히 견딜 수 없더군.

그런 불평을 할 만큼 기존의 미스터리 소설에 식상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여탐정 라모츠웨의 활약상을 다룬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를 읽을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여탐정이라니?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에서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30세의 뚱뚱한 이혼녀 라모츠웨도 미스 마플처럼 평범하고 수수한 여자다. 하지만 미스 마플이 전통적 미스터리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라모츠웨는 전통을 깨고 새롭게 태어난 미스터리 소설의 주인공이다.

무엇보다도 라모츠웨는 살인사건 등 강력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녀에게 의뢰되는 사건들이란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만한 소소한 것들뿐이며, 사건 해결 방식도 이웃의 갈등을 해결하는 너그럽고 오지랖 넓은 동네 아줌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경직된 선악의 기준이 아닌 화해라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기준에 맞춰 사건을 해결한다. 활약상을 하나 들어 보자. 어떤 늙은 남자가 혈혈단신의 어떤 젊은 여자를 찾아와 자신이 옛날에 헤어진 아버지임을 내세우며 그녀의 집에 들어앉는다. 난처해진 여자는 라모츠웨를 찾는다. 라모츠웨는 간호사 차림으로 그를 찾아가, 당신의 딸이 교통사고로 다 죽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당신의 피가, 그것도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만큼 엄청난 양의 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솔로몬의 지혜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동안 나는 문학을 통해 인간미 넘치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수없이 만났다. 하지만 라모츠웨만큼 멋진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백인이지만 짐바브웨 출생인 작가가 멋진 아프리카 사람이기에 그처럼 멋진 아프리카 여탐정의 탄생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라모츠웨의 뚱뚱한 외모조차 이 소설에서는 매력이다. 하기야 날씬하고 말라야 미인이라는 식의 가치 기준은 사진술과 오늘날의 상업주의가 공모하여 꾸며낸 허구가 아닌가.

며칠 전 밤늦은 시간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번역도 유려하지만 라모츠웨의 인간미가 어린 시절의 엄마 품만큼이나 푸근하기에 끝까지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이 무더운 여름, 여탐정 라모츠웨와 함께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느긋한 미스터리―이른바 ‘안락한 미스터리(cozy mystery)’―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어떨는지?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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