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CEO 독서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04분


“아내는 나를 책에 관한 한 이멜다 마르코스라 부른다.” 구글과 야후, 유튜브, 페이팔 등에 투자해 15억 달러의 재산을 모은 미국의 벤처 투자가 마이클 모리츠의 말이다. 전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1989년 사망)의 부인 이멜다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구두를 사 모아 화제가 되었다. 모리츠의 책탐(冊貪)을 알 만하다. 뉴욕타임스(21일자)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의 많은 최고경영자(CEO)는 개인 서고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독서를 즐긴다. 분야도 비즈니스 쪽보다는 소설이나 시(詩) 같은 순수문학이 더 인기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은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의 공립도서관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컴퓨터 운영체제로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됐지만 “컴퓨터가 결코 책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요즘 영국의 시인 겸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에게 사로잡혀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도 비행기 여행 중 책을 읽다가 새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독서광 CEO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한 달에 평균 20여 권의 책을 읽는다는 그가 자택 뜰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한다. 삼성그룹의 개혁 방향이 그가 읽은 책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지난해 출간된 ‘CEO, 책에서 길을 찾다’에 나오는 13명의 명사도 “책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4년부터 여름 휴가철이면 CEO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20선’을 내놓고 있다. 18일 발표된 올해의 추천 도서엔 ‘부의 미래’ ‘힘의 이동’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이 포함됐다. CEO란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미래의 트렌드와 전략에 관한 책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휴가 중 CEO의 독서는 “일상의 반복적 업무에서 벗어나 거시적 관점에서 전략적 사고에 필요한 영감과 상상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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