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후자와 같은 추리소설은 결말을 알게 되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읽고 싶은 기분이 된다. 읽을 때마다 가슴 설레는 요소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기리노 나쓰오는 믿고 집어 들 수 있는 작품을 쓰는 몇 안 되는 작가다.
기리노의 ‘아웃’을 다시 읽는다. 이번이 세 번째다. 정말이지 독자를 압도하는 소설이다. 첫 장면이 한참이나 머릿속에서 맴돈다. 야요이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함께 모은 돈을 몽땅 도박과 계집질로 날리고 외려 큰소리다. 급기야 구타하기에 이르자 야요이의 인내는 분노로 바뀌고, 결국 살인을 저지른다. 이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야요이가 동료에게 부탁해 불려나온 세 명의 여자들이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 질척질척한 풍경이라니…. 단지 소설일 뿐이라고 애써 자위하면서도 무시무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습게도 이들은 이후 시체를 유기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꿈이나 희망이 없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픽션에까지 그런 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는 기리노답게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니힐리즘’이다. ‘아웃’에 등장하는 네 명의 중심인물은 모두 사회로부터 ‘아웃’된 채 도시락 공장에서 야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이기적인 소리만 지껄이는’ 가족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고독하게 현실과 맞서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때문에 ‘이제 됐어, 그만 끝을 낼까’ 생각하면서 죽음을 향해 한 발짝 나가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뒷머리를 잡아채어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가족이다. 결국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남은 수순은 가족을 죽이는(혹은 버리는) 일이다. 필요에 쫓기면 뭐든 하는 존재, 그게 바로 인간인 것이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묘파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공포와 등을 맞댄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장기인 기리노. 그 정점에 이 소설이 있다. ‘일본 범죄소설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아웃’이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