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오세정]‘과학기사’ 전문가에게 자문하자

  • 입력 2007년 7월 3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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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언론 매체에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 개발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빈도가 높아진다. 일반 시민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과학적 소양을 길러 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막상 연구개발 현장에서 일하는 과학자나 공학자는 이런 보도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전문가가 볼 때 한국 언론에 보도되는 많은 과학기술 관련 기사가 과장돼 있거나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세계 최초, 몇십 년 동안의 난제 해결, 기술적 가치 수십조 원 등의 수식어가 붙어 다니지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분명히 틀린 사실이 버젓이 보도되는 일도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과학기술자는 ‘언론이 원래 그렇지’라고 냉소적으로 반응하거나 ‘과장된 홍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무관심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길게 보면 과장 허위 보도는 과학기술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정부 정책이나 여론 흐름에 잘못된 정보를 주게 되므로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황우석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황우석 박사의 거짓이 밝혀지기 전에도 많은 과학자는 과장 홍보에 심각한 우려를 가졌지만 ‘과학계에도 영웅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묻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결국 눈 덩이 같은 거짓을 낳은 한 요인이 됐다.

과학자는 과장 보도가 나오면 기자의 전문성 부족을 탓하곤 한다. 기자도 애로사항을 토로한다. 복잡 다양한 과학기술계의 여러 결과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중요성을 평가할 전문성을 혼자 확보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마감까지의 짧은 시간에 도움이 되는 권위 있는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권위자를 찾았다고 해도 한국처럼 좁은 바닥에서 다른 연구자가 홍보하려는 내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적당히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학자와 기자가 서로 네 탓만 하고 있어서는 상황이 개선되기 어렵다. 과학 보도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과학자가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인 과학기술자의 협조 없이는 원천적으로 언론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어렵다.

다행히 최근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물리학회는 미디어 브레인 풀(Media Brain Pool)을 조직해 기자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자문을 할 때 관련 분야의 믿을 만한 전문가를 소개해 주기로 했다. 잘 활용하면 앞으로 기사의 진실성과 중요성에 대해 최소한의 검증(스크리닝)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이 관련된 사회 이슈에 대해 객관적인 의견을 제공하는 역할도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큰 홍역을 치른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터 선정의 경우 찬성 또는 반대 단체의 극렬한 구호만 무성했지 전문가의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은 찾기 어려웠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위 스타워즈(Star Wars)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미국물리학회가 연구팀을 구성해 많은 기술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이것이 후에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수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 바 있다.

원래 과학기술자는 사회적인 다툼에는 끼어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과학기술 문제가 다툼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제대로 밝히는 일은 과학기술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과학자가 자신을 위해서나 사회 발전을 위해서 세상과 통(通)해야 할 시점이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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