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제1의 국정 구호(口號)로 애용했다. 이 말에는 ‘60년 이상 된 패전(敗戰)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신과 긍지를 가진 일본으로 거듭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승전 연합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던 헌법을 개정(자주헌법을 제정)해 진정한(眞の) 애국심과 내셔널리즘을 구현하자는 주문도 들어 있다. 개헌의 핵심 쟁점은 군비(軍備)와 교전권(交戰權)을 부인한 9조의 개정 여부다. 이 조항 때문에 현행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지만, 아베 총리는 여기에 손을 대려 한다.
보수화(保守化)는 일본의 대세다. 침략전쟁 및 식민지배 등 과거사에 대한 책임의식 둔화,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國家主義)에 대한 향수(鄕愁), 패전국의 족쇄를 끊고 군사적 선택도 자주적으로 하자는 이른바 ‘보통국가화’ 추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아베 총리의 ‘아름다운 나라’는 다수 일본인의 정서에 반(反)하는 것은 적어도 아니었다.
생활維新에 참패한 거대담론
그런데도 그가 이끄는 자민당은 7월 29일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고전(苦戰)이 예견되긴 했지만, 제1야당 민주당 60석에 자민당이 37석밖에 못 건진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역사적 대패(大敗)였다. 재작년 9월 중의원 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거둔 압승을 고스란히 반납한 꼴이 되고 말았다.
오자와 이치로(65) 민주당 대표는 아베 총리가 걸어 놓은 ‘아름다운 나라’의 건너편에다 ‘생활유신(維新)’을 내걸었다. ‘생활유신’은 ‘전후(戰後·패전)체제 탈각’ 같은 아베 총리의 추상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빛바래게 한 현실적인 국민 삶의 주어(主語)다.
오자와는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할 때까지 ‘보수 본류’의 막강한 실세(實勢)로 군림했던 ‘일본 보통국가론’의 원조(元祖)다. 그가 말하는 보통국가는 ‘정치 외교 군사 경제의 주권(主權)을 확립하고,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다. 그는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는 철책이 없다”면서 국가와 개인의 ‘자기책임하의 권리행사’를 강조했다. 그 오자와가 이번 선거에서 “생활유신이야말로 최대의 정치과제”라고 치고 나와, 총리가 된지 10개월밖에 안 된 아베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아름다운 나라’는 그럴듯한 구호지만 아베 총리는 연금(年金) 복지(福祉) 소득격차 등 민생 문제에 대처하는 데 둔했다. 그의 리더십은 ‘후수(後手)’라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뒷북’과 비슷한 말이다. 눈앞의 삶을 고민하는 일본인들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 못하는 총리를 ‘민생정책에 약한 리더’로 인식했다. 그 틈새를 ‘생활정치’로 파고든 것은 어떤 관점에서든 오자와의 ‘실력’이다.
편협한 인사(人事)와 그룹싱킹(group-thinking) 체질도 아베 총리의 패인(敗因)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과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생각하는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당 총재 당선을 도운 무능한 인물들을 각료 등 요직에 끌어모았다. 그래서 ‘친구(ともだち·友達)내각’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렸다. 이런 각료들이 실언(失言)이나 정치자금 의혹 등으로 잇따라 자질 시비를 불렀지만, 아베 총리는 감싸고돌았다.
한국 與圈은 노무현色세탁 열풍
한통속끼리 일하면 찬반격론의 수고는 덜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한쪽에서만 좁게 보는 것이 그룹싱킹의 치명적 결함이다. 집단편견에 사로잡혀서는 복잡다단한 국정현안들에 사려 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그런 내각을 곧잘 “나의 내각”이라고 불러 국민의 빈축과 반감을 더 키웠다.
5년 전 한국에선 균형발전, 서민대통령, 참여정부, 자주국가를 내세운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돼 코드가 같은 사람들로 정부를 채웠다. 지금 여권(與圈)은 ‘노무현색(色) 지우기’에 필사적이다. 그러면서 내놓는 것이 미래창조요, 대통합이요, 민주신당이다. ‘그룹싱킹’ 코드와 현란한 구호정치가 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동해의 이쪽저쪽이 닮았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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