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시장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선진국 정부, 중앙은행, 최고의 투자가도 모두 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골드만삭스, 베어스턴스, BNP파리바 등 세계 최고의 금융회사도 비틀거렸다.
전문가들도 원인과 해법을 놓고 “즉각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모럴 해저드를 불러온다” “책상물림인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등 제각각이다.
하지만 최근 한 달간 파이낸셜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국 언론에 나타난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감대를 넓혀 가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다.
첫째, 금융시장이 한 번도 겪지 못한 종류의 불확실성에 패닉(공황)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서구 자본주의 300년 역사에서 금융시장의 급등락은 항상 있어 왔다. 하지만 별개의 시장이던 주식, 채권, 부동산, 통화시장이 지금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한 곳의 내부 충격이 전체 금융시장으로 이처럼 빠르게 퍼져 나간 것은 처음이다. 금융 세계화, 헤지펀드의 과도한 차입도 이를 증폭시켰다.
둘째는 위험을 쪼개 나눠 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복합금융상품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제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당혹스러운 신호를 준다. 외환위기 이후 ‘모범답안’으로 여기며 무조건 따라가던 선진국이 항해 도면도 없이 ‘금융 세계화’라는 미지의 바다를 항해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스승의 한계를 발견한 지금, 스승을 바꿔야 할까. 하지만 세계화의 포기는 다시 뒤로 돌아가는 길이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무서워 인터넷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유일한 대안은 스승의 한계를 알고 그를 뛰어넘는 길이다. 우선 스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실력을 쌓는 것이 급하다.
외환위기 전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참담했다. 리스크 분석 능력도 없이 복합금융상품을 덜컥 샀다 수백 억 원을 날린 증권사도 있었다. 경제 관료들은 국가 부도 직전까지 “한국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지난 10년간 금융 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회사의 행태를 보면 갈 길이 멀다. 불과 보름 전까지 낙관론 일색인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경험도 없이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해외투자 펀드도 불안하다. 은행과 보험사는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다.
정부도 마찬가지. 13일 금융 당국의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한 뒤 “한국은 별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하루 만에 주가가 폭락했다. 시장의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사안에 대한 정부의 깊이 있는 이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20일 주가 상승을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의 마무리로 판단하면 오산이다. 선진국이 그들도 처음인 바닷길에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며 어떤 교훈을 얻는지 지켜봐야 할 시간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새로운 길이기에 우리에게도 동등한 기회의 문이 열려 있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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