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대통령은 힘이 세다

  • 입력 2007년 8월 21일 19시 34분


코멘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세계 일류국가를 건설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의 후보로서, 어떤 후보와 맞서도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어지고 있으니 벌써 청와대 정문 앞에 도달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정당에서도 머지않아 후보가 결정된다. 국민이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가 됐다. 어떤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할까. 굳이 오래전 역사를 뒤적이는 고생을 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일상(日常)에서 쉽게 비결을 찾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훌륭한 선택의 기준이 떠오른다.

아무리 넋두리를 해도

노 대통령도 처음엔 자세를 낮췄다. 2003년 5월 9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대통령과 언론사 논설·해설위원 간담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첫 미국 방문을 이틀 앞둔 노 대통령은 2시간 동안 20명이 넘는 기자들의 ‘말 세례’를 받았다. “얘기 듣고 실수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마련했다”는 대통령의 모두(冒頭) 발언에 힘을 얻었는지 기자들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온갖 충고를 쏟아 냈다. “말조심 하라”는 당부까지 나왔다. 필자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명색이 대통령이다”라는 말로 불편한 심경을 표출하기는 했지만 “도움이 되는 자리였다”며 초청자답게 간담회를 맺었다. 청와대를 나서며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어렴풋이나마 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후 노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지지율이 추락하고 정권이 거센 역풍을 맞을 때마다 “차라리 식물 대통령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내 임기는 이제 끝났다”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이 없다”며 약한 척 넋두리를 했지만 다 위장전술이었다. 노 대통령은 보고 싶은 장면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은 누가 뭐래도 했다. 임기 말 남북 정상회담은 ‘좌충우돌 통치’의 결정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참여정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라고 떠들던 사람이 대통령으로 4년 반을 그렇게 지냈다. 임기 6개월이 남았지만 노 대통령은 끝날까지 국민 위에 군림할 계획인 것 같다. “축구경기로 치면 후반전 10분이 남았다”거나 “임기 말까지 바쁜 정부가 될 것이다”라는 측근 인사들의 말이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대통령은 원래 힘이 세다. 이 나라 어느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대통령이다. 국민이 지지하건 반대하건 일을 벌일 수 있다. 국민이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임기 말 남북 정상회담은 안 된다며 멱살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기껏해야 국민은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하길 바랄 뿐이고, 이런저런 주문을 해서 조금이나마 수용하면 고마워할 뿐이다.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잘 골라야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출발점은 유권자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힘센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도 겸허한 자세로 민심을 반영할 줄 아는 덕성을 갖춘 인물을 찾는 것이 힘없는 유권자의 할 일이다.

정치사상가 아이제이어 벌린은 자유를 ‘부정적 자유’와 ‘긍정적 자유’로 구분했다. 부정적 자유는 ‘벗어나는 자유(freedom from)’이고, 긍정적 자유는 ‘할 수 있는 자유(freedom to)’다. 잘못 뽑은 대통령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 않으려거든 긍정적 자유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 심각하게 고민하고 신중하게 선택하자.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될 소지가 있는 후보는 우선적으로 제쳐 놓아야 한다. 잘못하면 또 뒤통수 맞는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