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립연구소 부소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소장인 피에르 오돈 박사를 도와 연구소 안팎살림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페르미 연구소는 그냥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라기보다 하나의 큰 마을이다. 과학자뿐 아니라 이들의 연구를 돕는 엔지니어, 사무원, 가족 등 3000여 명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다. 이들을 위한 소방서도 있고 꽃밭을 가꾸는 정원사도 있다. 마을의 모든 구성원이 각기 맡은 자리에서 편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게 내 임무다. 마을 촌장, 아니면 살림꾼이라고 보면 된다.”
김영기 교수 | |
△1962년 경북 경산시 출생 △1984년 고려대 물리학과 졸업 △1986년 고려대 물리학과 석사 △1990년 미국 로체스터대 박사 △1990∼1996년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연구원 △1996∼200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2003년∼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 △2004∼2006년 미국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양성자 반양성자 충돌실험그룹(CDF)’ 공동대표 △2006년∼ 미국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부소장 |
―과학자 그룹을 이끌던 때와 연구소의 책임을 맡은 지금의 차이는….
“솔직히 예전에는 연구만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하는 소립자 연구에만 몰두하면 그만이었다. 부소장이 된 뒤에 시선이 많이 넓어졌다. 하나의 연구가 성공하기까지 과학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연구소 주변의 화단 꽃이 예쁘게 잘 자라는지가 더 궁금할 정도다.(웃음)”
김 교수의 아버지는 그가 부소장에 취임한 직후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글귀를 써서 보냈다. 그는 이 글귀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하늘의 이치(자연)를 따르는 것과 사람을 향한 마음은 하나라는 사실을 요즘 들어 부쩍 실감한다고 했다.
―고 이휘소 박사의 영어 이름(벤저민 리)을 딴 펠로십(과학자 지원제도)을 만든다고 하던데….
“한국에서는 잊혀져 가지만 페르미 연구소에서 이휘소 박사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다. 처음 의견을 내놨을 때 뜻밖에 주변의 과학자들이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지금까지 연구소가 물리학자에게 주는 펠로십은 ‘윌슨 펠로십’, ‘레이더먼 펠로십’ 등 주로 노벨상 수상자나 연구소 소장의 이름을 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벤저민 리 펠로십’은 이 박사가 생전에 활동한 이론물리 분야의 젊고 유망한 과학자에게 줄 예정이다. 재원 확보도 끝나 유족의 동의만 받으면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실제로 김 교수와 이 박사의 인연은 깊다. 이 박사는 1977년 6월 교통사고로 숨지기 전까지 이 연구소에서 입자 이론물리 분과의 총책임자를 맡았다. 또 대학시절 그의 스승은 이 박사의 첫 번째 제자인 강주상 고려대 명예교수였다. 학문적으로 이 박사는 김 교수의 할아버지뻘인 셈이다.
―행정업무를 하다 보면 연구와 학생지도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니다. 질량의 근원을 찾는 연구는 여전히 내 관심사다.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충돌시켜 나오는 더 작은 입자를 조사하면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130억 년 된 우주의 역사를 밝히는 데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부소장이 된 뒤에도 제자들을 지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제자들을 집에 불러 중간 점검을 한다. 토요일 아침잠을 설치면서도 이해해 주는 남편(시카고대 물리학과 시드니 네글 교수)의 외조가 크다.”
―요즘 부쩍 한국인이 페르미 연구소를 많이 찾는다고 하던데….
“미국 시카고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년에 4차례 시행한다. 지난해에는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올해 초에는 경기과학고 학생 90명이 연구소를 찾았다. 물론 일반인도 신청만 하면 방문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방문하면 내가 안내도 하고 강연도 한다. 과학자가 대중과 만나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활동은 과학의 저변 확산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학생이 많이 와서 거대 입자가속기를 보면서 과학을 향한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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