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씨가 출마선언을 한 것은 6월 19일이다. 8월엔 부분 개각이 있었다. 청와대는 당시 장관들에게 일일이 ‘잔류 의사’를 물었다. 이치범 씨는 그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민주신당의 ‘컷오프 예비경선’을 불과 사흘 앞둔 상황에서 장관직을 던지고 캠프 합류를 선언한 것이다. 편한 대로 장관을 그만두고, 편한 대로 장관을 빼내 가는 행태는 고위 공직을 ‘호주머니 속의 사물(私物)’쯤으로 여기는 국정 농단이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국정에 무슨 책임감이 있다고 대통령직을 넘보는가.
이치범 씨는 장관 사퇴 발표 직후 “이 전 총리와는 20년 이상 가깝게 지낸 터라 내가 캠프 합류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이해찬 씨에 대한 여론 지지율은 1∼3%대로 바닥권이다. 5선 의원, 교육부 장관에 막강 실세(實勢) 국무총리까지 지냈는데도 자신의 보좌관 출신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조차 밀리자 현직 장관의 캠프 합류 같은 이목 끌기 이벤트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장관을 빼내면 욕이나 더 먹지 않겠는가.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출신인 이치범 씨는 자신을 자원재생공사 사장 자리에 앉히고, 환경부 장관으로까지 끌어 준 이해찬 씨에게 부채 의식이 있을 것이다. 이해찬 씨 캠프 관계자는 “이 장관이 국회의원도 아니고 고양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이력으로 어떻게 환경부 장관까지 했겠느냐”고 말했다. 장관감이 안 되는 사람을 장관으로 만들어 줬다는 얘기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 이해찬 씨가 ‘사정이 급하니 빚을 갚으라’고 했단 말인가. 이치범 씨는 이해찬 씨에게 사적(私的) 빚을 갚기 위해 그런 식으로 장관직을 내팽개쳤단 말인가. 국민 앞에 너무 방자하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