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회균등할당제는 비교적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된다. 여기에는 두 개의 변수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공간규모’와 ‘다민족’ 국가라는 변수다. 미국은 면적이 우리나라의 40배가 넘는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비행기로 7시간, 승용차로는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가늠이 잘 되지 않는 장거리다. 이런 이유로 특정 지역으로의 쏠림 없이 지역별로 주요 거점 대학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공간적 특성이 ‘다핵(多核)’ 구조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여기에 더하여 문화변수가 작용했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다. 손님처럼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내적으로 백인(WASP) 주류사회의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뚫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만족한다. 유명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는 크게 핸디캡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다. 공간적으로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어느 곳에서든 시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미국과 같은 ‘공간변수’가 작용할 수 없는 환경이다.
여기에 산업화 이후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서울로의 쏠림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 과거 지방의 거점대학 역할을 했던 국립대학들이 현재 고사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란 말이 의미하듯 우리 사회의 독특한 정서도 한몫을 한다.
이렇듯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조건하에서 기회균등할당제를 기계적으로 확대 적용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대학의 공동화(空洞化)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의 인재들이 ‘단핵(單核)’ 역할을 하는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게 된다. 굳이 지방대학을 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염려는 대학 총장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대통령이 기회균등할당제를 거론했을 때 가장 먼저 반대 견해를 취한 쪽은 지방대학 총장들이었다.
현재도 기회균등할당제도가 없어서 소외계층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 정책은 여러 부분에서 적용되고 있다. 입시에는 농어촌 특별전형 및 지역할당 전형이 있다. 이를 통해 교육적 배려를 하고 있다. 더구나 기회균등할당 전형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이 소정의 과정을 제대로 마칠 수학능력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현재 실업계 특별전형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의 80% 이상이 중도 탈락한다는 보도는 이런 우려를 현실화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기회균등할당제 확대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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