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주도한 과학으로 물리학을 꼽는다. 특히 가장 많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론물리학을 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원자와 원자핵 그리고 그보다도 더 기본적인 물질의 구성요소를 다루는 입자물리학이 가장 많은 노벨상을 받았다.
입자물리학자는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거의 투고하지 않는다. 많은 독자를 학보하려고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과학에 흥미를 가지는 과학자를 겨냥한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대중 학술지보다는 물리학만을 다루는 전문 학술지를 선호한다.
네이처나 사이언스는 수식을 많이 쓰는 수학, 물리, 화학보다는 대중과의 소통이 그나마 손쉬운 생명과학의 논문이 주류를 이룬다. 이번에 선정된 과학자를 보면 거의 전부가 생명과학자다.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없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획일적이고 기계적이며 나무만 헤아리고 숲을 보지 못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국내 과학계의 이곳저곳에서 보여 걱정이 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고등과학원이란 기관이 있다. 수학과 이론물리를 주축으로 생겨난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연구기관이다. 몇 년 전에 이 기관을 평가하는 평가위원을 선정했는데 학연과 지연을 피하는 등 공정성 확보를 주장한 나머지 정작 이론물리를 하는 과학자는 한 명도 선정되지 않았다.
연구 지원을 위한 심사위원도 공정성 시비를 피하려고 비슷한 우를 범한다. 우수과학연구센터(SRC) 지원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의 평가에도 지연, 학연의 시비를 차단하려고 해당 대학과 관련된 인사를 제외한다. 문제는 SRC가 있는 대학 자체가 거의 모두 우수 대학이기에 평가위원의 업적이 평가를 받는 사람의 업적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외국은 어떨까. 미국 코넬대에 케네스 윌슨이란 젊은 조교수가 있었다. 관례에 따라 5년간의 연구 업적을 토대로 부교수 승진 심사를 했다. 그는 5년 동안 단 한 편의 논문도 내지 않아 모두가 탈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파인먼(노벨상 수상자) 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윌슨이 앞으로 5년 동안 논문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더라도 부교수로 승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가 보기엔 우수한 과학자라는 이유였다. 코넬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윌슨 교수는 1982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미국 과학재단의 전문위원은 자기가 좋다고 판단하는 연구에는 본인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무릅쓰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왜 국내에서는 객관성과 공정성에 신경을 써야 할까? 가장 큰 문제는 교수와 과학자의 집단이기주의이다. 우열의 차이가 분명히 보이는데도 자기 분야에는 상식을 넘어서는 후한 점수를 준다. 이런 교수나 과학자일수록 연구자로서 공적이 적다.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면서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심사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인사로 구성된 집단이 필요하다.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양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관점에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심사 및 지원 체제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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