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감사원장과 정상명 검찰총장의 임기가 오는 11월에 끝난다. 이들의 후임자 임명 문제에 대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15일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견해를 밝혔다. ‘12월 대선 이후엔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 차기 정부에서 일할 요직의 인사권은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후보는 “현 정부가 저질러 놓은 것을 그대로 다음 정부에서 하면 부채가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코드의 정책으로는 경제 활성화, 민생 회복, 재정 건실화 같은 숙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 후보의 지론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유 중의 하나다.
次期할 일까지 못질하려는 客氣
하지만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넘어 후대 정부의 정책에까지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고 싶다”고 외친다. 12일 제주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해서는 “(현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을 어느 정부도 흔들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다음 정부에서도 지금의) 정책을 지킬 지방의 시민조직이 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차기 정부가 현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을 바꾸려 한다면 시민저항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주문 같다.
경제정책뿐 아니다. 그는 지난 6월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전임 사장이 발행한 어음은 후임 사장이 결제하는 거다. (임기가)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내가 가서 도장 찍어 합의하면 후임 사장이 거부 못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코드를 시대정신이라 규정하며 국가경영을 독불장군 식으로 해 왔다. 그것도 모자라 경제정책이건 대북관계건, 다음 정부까지 자신의 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일을 벌여놓겠다는 얘기다.
마침 지난주 서울에 온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한국 대선과 관련해 “차기 대통령은 무조건 자신의 신념대로 밀고 나가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유연성 있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과잉 신념’을 염두에 둔 지적일 것이다.
아무튼 차기 정부가 현 정부의 노선과 정책을 바꿀 수 없다면 5년마다 새 대통령을 뽑을 필요도 없다. 노 대통령은 5년 전의 유권자 선택을 근거로 ‘노 코드=시대정신’이라고 내세웠다. 그렇다면 3개월 뒤에는 새 대통령 당선자가 새 시대정신을 대표해야 맞다. 그 선택의 장(場)이 곧 대선이다. 그리고 이미 국민은 희망을 다음 정부에 걸고 있다.
노 정권 사람들의 언론 탓, 야당 탓, 심지어 국민 탓을 말릴 수는 없지만 엄연한 사실은 ‘노무현 국정’을 지지하는 국민이 20% 안팎에 그친다는 점이다. 노무현적인 것에 대한 부정(否定)이 새 시대정신이라고 등식화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형편이 이런데도, 사실상 석 달밖에 남지 않은 마지막 하산(下山) 길에 새삼 ‘등산 모드’로 신발 끈을 매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여권(與圈)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이 ‘노 코드’를 고스란히 따르고 싶어 할 것으로는 상상되지 않는다. 지난 5년의 참담한 실패를 반복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 잠근 단추는 풀고 다시 잠가야 문제가 해결된다.
국민 설거지거리 그만 만들어야
노 대통령이 퇴임 후의 입지를 걱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럴수록 설거지거리를 더 만들어 다음 정부에 넘기는 일은 지금부터라도 극력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달 2일 평양에 갈 때도 이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
자신은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그 설거지는 국민과 다음 정부에 내맡긴다면 퇴임 후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다. 그런 이해타산 이전에 나라 흔들기로 5년을 지새운 정권이 마지막으로나마 국민에게 예의를 지키겠다면 더는 무거운 짐을 떠안기지 말 일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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