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규제 줄였다더니 미등록 규제만 3000건

  • 입력 2007년 9월 17일 21시 55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법령과 고시 등에 정해 놓은 행정규제가 작년 말 8084건에서 현재 5078건으로 줄었다고 자랑했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말 7724건에서 작년까지 규제가 매년 100건씩 늘어났는데 올해 초엔 무려 3000건을 폐지했다는 것이다. 무려 37%의 규제가 줄어든 셈인데 행정의 수요자인 민간기업의 체감(體感) 규제는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실적을 과장한 뻥튀기 규제 개혁과 규제 장부에 잡히지 않은 미등록 규제 때문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정부의 규제 개혁은 똑같은 내용의 15개 규제를 개선해 놓고 관련 부처 수를 모두 합산해 62개라고 자랑하는 식이었다. 줄이라는 규제는 안 줄이고 실적 통계만 부풀린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 요청에 따라 행정규제 실태를 점검하던 중 규제개혁위에 등록되지 않은 규제 3000건을 찾아냈다. 규제 건수를 세는 기준에서 정부와 민간이 다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민간기업은 규제라고 생각하고, 정부는 규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대상이 3000건이라니 인식 차가 너무 크다.

전경련 조사에서 드러난 사례 중에는 여러 건의 관련 규제를 하나로 등록한 경우도 있다. 원칙만 등록해 놓고 세부 규제 내용을 등록하지 않기도 했다. 공무원은 규제가 아니라고 보지만 기업으로선 부담스러워하는 규제도 있다. 규제의 질(質)도 문제다. 법령 아래의 고시(告示)에 기업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기준을 정해 놓기도 한다. 이행 여부를 확인하지 못할 내용을 줄줄이 적어 놓은 경우도 있다. 연못을 향해 무심코 던지는 돌에 개구리의 생사가 달린 줄 모르는 것이다.

규제 개혁은 민간의 시각에서 해야만 가치가 있다. 규제 완화 여부에 대한 평가는 수요자인 민간기업으로부터 나오는 게 진짜다. 작년 5월 국무총리실이 규제개혁 효과를 기업에 물어본 결과 긍정적인 평가가 34.1%에 그쳤다. 숫자 부풀리기로 장관과 대통령은 속일 수 있어도, 규제에 압박받는 기업들은 속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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