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공화당의 덫, 黑白의 정치학

  • 입력 2007년 9월 28일 03시 06분


지난주 미국 루이지애나 주 제나에선 대규모 거리 행진이 있었다. 백인 학생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흑인 학생 6명에 대한 불공평한 처벌을 항의하기 위한 시위였다.

이에 앞서 ‘백인 나무’로 알려진 나무 아래에 흑인은 앉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로 교수형을 암시하는 올가미를 걸었던 백인 학생들은 3일간의 정학 처분에 그쳤다. 이에 반해 구타 사건의 흑인 학생들은 2급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제나의 행진 장면을 보면 이번 사태가 21세기가 아닌 1960년대의 일처럼 여겨진다. 뉴욕타임스는 ‘루이지애나의 시위는 공민권 운동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현실이다. 특히 남부에서는 인종 간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다. 인종 문제는 미국 정치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중간선거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주요 인종 그룹이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 그러나 남부의 백인들은 달랐다. 이들 중 62%가 공화당에 투표했다.

남부 백인들의 이 같은 ‘예외’는 도덕적 가치나 종교 같은 다른 요인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인종에 따른 결과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학적 조사도 많다. 토머스 F 셸러는 저서 ‘철지난 딕시(남북전쟁 때 유행한, 남부를 찬양한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르며’에서 이런 현실을 잘 요약했다. “공화당의 대언론 전문가들이 미국의 보수주의를 인종과 무관한 현상으로 묘사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지만 오늘날 남부에서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세력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더 강하다.”

1970년대 공화당의 전국적인 성공이 전적으로 남부 백인들의 세력화에 따른 산물이라는 점을 잘 아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암묵적으로 이런 현실을 인정해 왔다. 제럴드 포드 이후 공화당의 대통령선거 캠페인은 으레 인종차별을 인정하는 상징적 제스처를 포함시켰다.

이번 주에는 내년 대선에 나선 공화당의 유력 주자 4명이 PB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던 소수인종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초청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공화당에 정치적 승리를 안겨 줬던 ‘남부 전략’이 이제는 공화당에 덫이 되고 있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에 대해 주목할 점은 이들이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 흑인만 무시하는 게 아니라 히스패닉까지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주요 대선 주자들은 7월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전국위원회로부터 연설 초청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스페인어 방송인 유니비전은 9월 16일로 예정됐던 토론회를 취소해야 했다. 참석 의사를 밝힌 사람이 존 매케인 상원의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런 행동들은 내년 선거에서 패배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화당에서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선 ‘텃밭’에서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텃밭은 이민자들에 대해 인종차별적으로 접근하는 남부 백인들이다.

이에 따라 루돌프 줄리아니(전 뉴욕시장), 미트 롬니(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같은 실용주의자들이 미국이라는 ‘요새’를 수호하는 방어자로 자처하고자 애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지난해 히스패닉은 69%, 아시아인은 62%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민주당에 지지를 보냈다. 공화당은 인종적 반감을 이용해 온 역사 때문에 곧 대가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될 것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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