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人文주간

  • 입력 2007년 10월 8일 03시 00분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김선일 씨 사건 같은 일이 또 일어나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 납치피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가 한 ‘예언’이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말은 3년 뒤인 올여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서 적중했다. 한국 정부는 탈레반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고 또 2명의 희생자를 냈다.

▷한국은 미국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 선진국들이 오래전부터 ‘지역 연구(Area Studies)’를 통해 다양한 나라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해 온 것과 비교된다. 이 교수는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지역 연구를 활성화하고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자고 주장한다. 만약 아프간 피랍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구축된 자료와 전문 인력을 통해 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역 연구가 취약한 것은 인문학의 부진 때문이다. 인문학은 흔히 문학 역사 철학을 뜻하는 ‘문사철(文史哲)’로 요약되지만 조금만 관심을 넓히면 바로 지역 연구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와 역사,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게 지역 연구이고 인문학이다. 이처럼 인문학은 실용성을 지닌 학문이다. 그런데도 국내 인문학자들은 캡슐화된 자신만의 방(房)에 갇혀 살아 왔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들이 제 역할을 못해 초래됐으므로 ‘인문학자의 위기’로 불러야 옳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빈민운동가 얼 쇼리스 씨는 1995년 뉴욕에서 마약중독자 노숙자 등 삶을 거의 포기한 31명을 모아놓고 저명한 인문학자들을 초빙해 일주일에 4시간씩 인문학을 가르쳤다. ‘한 끼의 빵’ 대신 ‘삶의 가치’를 양식으로 제공한 것이다. 17명의 수료생 중 뒷날 2명은 치과의사가 됐고, 1명은 간호사가 됐다. 대학원 진학자들도 있다. 각박한 세태일수록 인문학의 인간 중시 철학은 돋보인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제2회 인문주간이다. 전국 8개 도시에서 74개 행사가 펼쳐진다. 인문학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알릴 좋은 기회다. 인문학자들부터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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