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미지 조작에서 한 수 위였음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8년간 근무한 바실리 미헤예프(사진) 러시아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IMEMO) 동북아시아연구센터 소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78∼1984년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소련의 대북 원조협상 실무자 역할을 맡았다.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을 어떻게 보는가.
“지금까지 남북 정상이 서명한 각종 선언이 그랬듯이 의도는 좋다. 평화 체제로 가는 길을 닦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안보와 핵 분야는 추상적인 데 반해 경제 협력은 구체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결과적으로 남한이 북한 페이스에 말려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협 확대가 남북 긴장을 완화할 수 없다고 보는가.
“북한 체제를 잘 알면 ‘그렇다’는 대답이 나온다. 북한 경제는 개방과 시장이 아닌 군수 분야의 우위를 지향한다. 한마디로 ‘병영 사회주의’ 체제이며 군수품이 동원 1순위이다. 이른바 ‘선군정치’가 어떤 것인지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북한 체제가 시장경제를 지향하도록 바꾸지 못할 경우 남한의 지원금은 군수품으로 바뀔 것이다. 경협 확대의 결과 긴장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순진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경협을 확대하는 것에는 ‘남북 회담의 정치적 이용’ 같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본다.”
―1980년대와 비교해 김 위원장이 변하지 않았나.
“예전보다 이미지 조작에 능숙한 인물로 바뀌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이번 정상회담 중 상당 시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다니도록 했다. 김영남 위원장을 노 대통령의 동반자로 내세우고 자신은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밝히면서도 판문점까지 환송하지 않은 것은 끝까지 자신이 노 대통령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고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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