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승을 하직했으므로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만난 옛 친구들은 조촐한 식탁에 둘러앉아 비 내리는 날의 해질녘처럼 처연하게 소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고인이 도회에 진출해서 사귀었던 또 다른 친구들도 맞은편 식탁에 둘러앉아 그와의 추억을 타서 마시듯 소주잔을 들이켭니다.
고인이 생시에 남겼던 여러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앓아 눕기 얼마 전, 여의치 못했던 서울 생활을 접고 홀연히 충청도 단양으로 낙향했습니다. 충주호에 있는 조그만 섬에 산다는 소식은 얼마 후에 들었습니다. 고인은 그곳에서 엉뚱하게 경험에도 없었던 염소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열댓 마리라는 보잘것없는 수효에 불과했으나 그는 큰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장차 섬에서 염소 사육을 기업화하여 코스닥에 상장하겠다는 포부였습니다. 그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습니다만 우리가 듣기에는 생뚱하고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기분 상할까 봐서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덧 현실감각조차 잃어버린 듯한 그 앞에서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여 주었을 뿐입니다.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섬을 찾아간 친구에게 코스닥의 꿈을 진지하게 토로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가슴에 품고 달려온 모든 삶의 에너지를 염소 기르기에 깡그리 쏟아 부어 버릴 것처럼 열정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몽상가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고인은 자신을 두고 그렇게 지칭하는 것을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염소 15마리를 사육하며 코스닥의 대박을 꿈꾸었던 즐거운 몽상가가 바로 그였습니다. 삶의 생성과 소멸, 갈림길에 서 있을 때도 그는 결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라져 버린 이후 세상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한 사람의 몽상가를 우리는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생시에 꾸었던 꿈을 지워 버릴 것처럼, 혹은 숨을 곳 없는 도망자처럼 성급하게 소주를 들이켜기 시작합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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