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여성 총영사를 지냈고 현재는 쇼와(昭和)여자대 학장으로 있는 반도 마리코(坂東眞理子) 씨가 쓴 ‘여성의 품격(女性の品格)’은 사뭇 다르다. 여성까지 남성처럼 돈과 권력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전통적 여성상에 구애될 필요는 없지만 거칠게 행동하고 저속하고 나쁜 말을 쓰거나 약자를 괴롭히지 말자고 권유한다.
▷현대 여성을 위한 새로운 도덕을 주창하는 저자는 몸가짐부터 마음자세까지 66가지 충고를 한다. ‘유행을 따르지 말라’ ‘육체의 아름다움을 노출하지 말라’ ‘고민을 깡그리 고백하지 말라’를 비롯해 ‘꽃 이름을 외우라’ 같은 것도 있다. 겸손과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조언에 ‘경험 많은 어른의 충고’라는 호평도 있고 ‘시시한 여성을 대량생산하려는 그렇고 그런 처세서’(시오노 나나미)라는 혹평도 있다. 어쨌든 지난해 10월 발간 후 160만 부나 팔렸다니 일본은 작년 최대의 베스트셀러 ‘국가의 품격’에 이어 요즘 ‘품격 모색’이 한창인 셈이다.
▷진정한 여자의 품격은 무엇일까. 가깝게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88) 씨가 떠오른다. 외모는 평범한 서양 할머니이지만 온화한 표정을 뚫고 나오는 성찰의 말들은 오랜 세월 자신과 깊이 대화하며 인간을 살펴 온 사람들만이 갖는 품격을 보여 줬다. 수상 소식을 들은 그는 덤덤하게 “그들(노벨상위원회)은 ‘언젠가는 그 여자에게 상을 줘야 할 텐데’라며 걱정했을 것이다. 내가 흥분하고 기뻐할 필요는 없다”고 반응했다 한다. 여자든 남자든 품격이란 것은 인생과 세계를 치열하게 대면하되 여유와 절제, 인내를 잃지 않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