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법도 처음엔 주에 따라 내용과 적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표준형’이 마련된 것은 1972년 켄터키 주 폴 브랜즈버그 기자의 마약 제조 실태 보도 사건이 계기가 됐다. 브랜즈버그 기자는 마약거래상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수사 당국의 요구를 일축했다. 연방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법원은 “언론사가 법정에서 취재원을 숨길 수 있는 헌법적 권리는 없다”고 전제한 뒤 “다만 정부가 취재원을 알고 싶다면 ‘압도적이고 강력할’ 만큼 공익에 부합해야 하고 그것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인 2003년 7월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가 국가기밀(리크 게이트)을 보도하면서 취재원 공개를 거부해 85일이나 수감되는 일이 생겼다. 이를 계기로 좀 더 엄격한 방패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16일 미 하원은 정부권력이 취재원 공개를 요청하려면 ‘검찰이 진실 파악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음을 입증해야 하고, 취재원 공개가 수사에 결정적이어야 하며, 임박하고 실질적인 국가안보 위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강화된 방패법을 398 대 21이라는 압도적 표 차로 통과시켰다.
▷언론의 주요 감시대상인 정치인들이 입법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언론자유가 기자나 언론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게 바로 사회학자 폴 스타(프린스턴대) 교수가 말한 ‘신생국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정신적 힘’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기자들은 취재원 보호는커녕 정부의 취재원(공무원)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는 처지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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