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최악의 수용소’

  • 입력 2007년 10월 25일 03시 03분


30, 40년 전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반공(反共)교육을 받았다. ‘어버이 수령’을 욕하면 부모 자식이라도 고발해 엄벌 받게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은 북쪽 사람들을 뿔 달린 괴물처럼 상상하기도 했다. 그렇던 반공교육이 어느새 사라지고 햇볕이니 포용이니 하는 말이 판치는 세상으로 변한 지도 10년을 헤아린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탈북자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옛날 반공교육 시간에 듣던 것보다 훨씬 처절하고 참혹한 사연들을 듣게 됐다. 그제 신동혁(25) 씨가 출간한 수기집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의 내용도 그중 하나다. 그는 ‘최악의 수용소’로 알려진 평안남도 개천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났다. 작년 탈북 때까지 24년간 김일성 김정일이 누군지도 모르는 완전통제구역에서 살았다.

▷신 씨는 1996년 탈출에 실패한 어머니와 형의 교수형 총살형 장면을 아버지와 함께 맨 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말없이 눈물을 쏟는 아버지와 달리 자신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억울하다’는 말은 아예 들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인권’이란 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용할 양식은 바라지 않아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수용소)에도 와 주소서.” 뮤지컬 ‘요덕 스토리’에서 울려 퍼지던 간절한 기도가 귓전을 맴돈다.

▷자유와 민주, 인권을 표방하는 남한 정부마저 북녘 동포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10년 전부터 남쪽 정부는 그들의 처절한 삶에 눈과 귀를 틀어막고 북한 정권과 평화협력, 민족공조만 합창한다. 이달 초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한 ‘대내문제 상호 불간섭’은 그 절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문제도 ‘상호 불간섭 대상’으로 묵인했다면 무슨 소리를 해도 ‘민족의 일부’인 2300만 북한 주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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