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시아 국가 하면 떠올리는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만 국한되어 있는 시각을 좀 더 넓혀 보자. 외환위기 이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난 지금, 외환위기를 심각하게 겪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경제를 한 번쯤 살펴보고 시사점을 얻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우선 외환위기의 발원지인 태국은 1998년 ―10.5%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극심한 경제침체를 경험했다. 하지만 수출이 국내총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주도형 국가답게 2001년 이후 해외 수요가 늘어나면서 태국 경제는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인도네시아도 1998년 ―13.1%의 성장률이었으나 국내총생산(GDP)의 70%가 넘는 국내소비가 개선되면서 성장세가 회복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들 동남아시아 경제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견실해졌을까? 물론 동남아시아 경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좀 더 개방화됐고 금융 부문의 투명성도 향상됐다. 여기에 기업경영의 효율성은 물론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개선됐고 각종 인센티브와 정치적 결단을 통해 외환위기를 초래한 구조적인 결점들을 보완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를 겪은 동남아시아 경제는 공통적으로 낮은 성장률과 투자 부진이 고착되는 부정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외환위기 이전에 연평균 9% 수준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던 태국은 2002년부터 경제성장률이 4.5∼7.0% 수준으로 다소 회복되기도 했으나 군부 쿠데타 이후 작년 4분기부터 성장률이 4%대로 둔화됐다. 인도네시아도 외환위기 이전 10년은 연평균 7%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최근에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의 아픔을 딛고 경제 회복을 실현하기는 했지만 저성장의 굴레를 아직은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이러한 저성장의 원인은 광범위한 부패가 지속되고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으며 외국인투자가 부진한 점 등의 이유로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 동남아시아 경제의 고성장을 이끌었던 기업인의 도전정신이 사라졌다. 그 결과로 1995년에 42.1%와 31.9%였던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GDP에 대한 투자율이 2006년에는 27.9%와 24.6%로 각각 떨어졌다.
여기서 동남아시아 경제의 저성장과 투자 부진이 우리 경제에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던 우리 경제의 높은 성장세는 외환위기 이후 크게 둔화됐고 기업투자도 매우 부진한 실정이다. 더욱이 아직까지는 약발이 먹히고 있는 수출 위주의 성장전략도 우리 경제가 이른바 샌드위치 신세에 놓이면서 수정해야 할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5년 동안 기업인의 도전정신을 되살려 기업투자를 활성화할 환경을 조성하고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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