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안에 하얀 종이가 끼워져 있지 않으면 관객으로선 최고다. 이 하얀 종이는 일종의 캐스팅 변동 고지서다. ‘오늘 ○○ 배역은 △△가 맡는다’라는 간단한 내용만 담긴 이 종이가 없다는 것은 ‘2진’ 배우 아닌 메인 캐스팅만으로 공연을 본다는 의미다.
브로드웨이에선 이렇게 당일 공연장에 가서야 관객이 그날 배우 캐스팅의 변경 사실을 안다. 대개 조연이나 단역 정도만 바뀌지만 아주 드물게는 주연 배우 아닌 대타(커버)가 출연할 때도 있다. 그래도 관객들은 별 군말 없이 본다.
한국은 어떨까? 일단 티켓을 예매할 때부터 몇 월 며칠 공연에 어느 배우가 나오는지 출연 스케줄이 미리 인터넷에 공개된다.
행여 배우가 예정 날짜에 못 나올 경우 브로드웨이처럼 당일 공연장에서 달랑 종이쪽지로 캐스팅 변경 사실을 알렸다간 난리 난다. 그래서 국내 제작사들은 캐스팅 변경 시 예매자에게 일일이 전화나 문자로 알리고 원하면 티켓을 교환·환불해 준다. 옥주현이 당일에 출연을 취소했던 ‘아이다’와 ‘김종욱 찾기’도 그랬고 최근엔 연극 ‘노이즈 오프’가 그랬다.
이는 결국 관객이 ‘작품을 보러 가느냐’ ‘스타(배우)를 보러 가느냐’의 차이다. 브로드웨이에선 ‘원 캐스팅’이 기본이어서 3개월이든 1년이든 배우들은 자기 배역을 혼자서 소화한다.
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 ‘엑스맨’의 스타 휴 잭맨은 뮤지컬 ‘더 보이 프롬 오즈’에 출연할 때 “커버도 필요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무대에 섰다. 정말 1년 가까이 혼자 작품을 짊어지더니 결국 토니상까지 거머쥐었다.
오랜 시간 다듬어져 무대에 올려진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대타가 출연해도 완성도는 별 차이 없다. 작품만 좋다고 소문나면 스타 없이도 표는 팔린다.
관객 기반이 취약하고 검증된 작품이 적은 국내에선 관객을 끌기 위해 스타를 기용한다. 바쁜 스타가 몇 달씩 한 작품에 묶여 있을 순 없는 데다 혼자 공연을 몇 달씩 이끌 역량이 되는 스타도 드물다. 그래서 스타와 뮤지컬 배우 한두 명을 번갈아 주연으로 세우는 더블, 트리플 캐스팅이 대세다. 4명이 번갈아 주연을 맡는, 용어도 생소한 ‘쿼드러플 캐스팅’도 등장했다.
스타를 캐스팅하지 못한 제작사들은 아쉬우나마 잠깐이라도 스타를 게스트로 출연시키는 ‘스타 카메오 캐스팅’까지 만들어 냈다. 스타 카메오의 출연 일정도 인터넷에 공개한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기획자의 창의적(?) 마케팅이다.
스타 캐스팅이 꼭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스타 캐스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가 뮤지컬의 대중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며 시장을 토실토실 살찌웠는지를 떠올리면 그렇다. 하지만 지나친 스타 의존도는 작품의 생명력도 갉아먹는다.
내년 하반기 ‘지킬 앤 하이드’는 다시 무대에 오른다. 몇 년째 군 입대 시기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조승우의 입대 전 마지막 출연설도 떠돈다. 제작사는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조승우 없는 ‘지킬 앤 하이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스타냐 작품이냐. 곧 2000억 원 시장을 바라보는 한국 뮤지컬계가 시작해야 할 고민이다.
강수진 문화부 차장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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