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이 후보가 1년 넘게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데도 한나라당의 ‘정신적 지주’라는 이 전 총재 입에서 나온 인물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여기에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 별로 논평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는…. 혹시 이 전 총재의 눈엔 이 후보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히스클리프’처럼 보이는 것 아닐까. 고아였던 히스클리프는 요크셔 농장에서 설움을 받으며 성장한 뒤 성공한 신사(紳士)가 돼 돌아온다. 그러나 지주인 린턴 가(家) 사람들은 그를 결코 ‘신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한나라당의 ‘린턴 가 사람들’은 이 후보를 히스클리프 보듯 한다. 적통(嫡統)임을 자임하는 서청원, 최병렬 전 대표는 물론이고 아마 강재섭 대표까지. 말은 않지만 거의 비슷할 것이다. 이 전 총재의 세 번째 출마설이 불거진 후 어느 당직자가 “그래 당신은 성골(聖骨)이라 이거죠”라고 비아냥댄 것도 그런 감정과 무관치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집안을 차지하면 그때부터 쿠데타의 기운이 싹트기 마련이다. 비상상황을 상정하고 초헌법적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전 총재 측근들과 ‘극우 탈레반’들은 이 후보의 ‘유고(有故)’ 가능성을 들고 있다. 이명박 암살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나마 봐줄 만한 명분이 ‘이명박의 대북관(對北觀)이 의심스럽다’는 것인데, 대통합민주신당도 아니고 한나라당 후보의 대북관을 의심할 정도라면 더 할 말이 없다. 하긴 멀쩡한 보수 논객들까지 남한에 700만 명의 고정간첩이 있다고 믿고 있으니 무슨 말로 그들을 설득하겠는가.
조갑제 씨 같은 사람은 “제2차 평양회담에서 노무현-김정일이 반역적 합의를 했는데도 이 후보는 남의 일처럼 여기면서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선거운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여기에 이회창 씨가 화난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난감한 질타다. 이 후보의 경제 살리기와 실용주의를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전 총재가 이런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출마 쿠데타’를 꿈꾸고 있다면 두 번의 대선에서 그를 지지한 도합 2000만 명의 지지자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를 찍었던 손은 결국 ‘고명(高名)한 몽상가’에게 놀아난 꼴밖에 더 되는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정계 은퇴 약속을 뒤집고 네 번째 대선에 나서자 당시 서울시장이던 조순 씨는 “이게 유신 쿠데타지 뭐냐”며 참담해했다. 물론 DJ의 쿠데타는 성공했다. 호남의 옹골찬 800만 표에 김종필 씨의 가세가 있었지만,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이 전 총재였다. 그걸 잊었단 말인가.
바뀐 현실에 저항하던 린턴 가는 결국 몰락했다. ‘폭풍의 언덕’의 새 주인은 누가 뭐래도 히스클리프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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