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킨이 누구인가. 그는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전설적인 댜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에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안무가이다. ‘빈사의 백조’ ‘레 실피드’ ‘불새’ ‘페트루시카’ ‘셰에라자드’ 등 그가 안무한 작품들은 그대로 20세기 발레의 역사가 된 불후의 작품이다. 바로 그 포킨이 ‘춘향전’을 안무해서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발레단을 받아들인 모나코 왕국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니….
나는 1960년대에 우연히 발레의 고서에서 이 사실을 발견하고 몹시 흥분했다. 그로부터 40년 동안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문 잡지의 지면에 이 ‘경사스러운’ 사실을 알리고 누군가 포킨이 안무한 춘향의 발레를 한국 무대에도 올려 주길 강권했다. 그러나 아무런 호응이 없었다.
발레 관련 문헌을 뒤져 보니 ‘사랑의 시련’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다시 피노 & 피아 믈라카 남매, 니콜라스 베리오조프, 조르주 제, 로데리히 폰 모이시소비치 등이 리메이크해서 미국과 유럽의 여러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한 발레 작품을 바로 춘향의 원적지인 한국에서만 모르고 있고, 모른 체한다니 그게 될 말인가.
해외에서만 떠돌던 ‘그녀’
그뿐만 아니라 ‘춘향전’ 발레는 포킨에 앞서 이미 1928년에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자이츠가 발굴 편곡한 음악에 의해서 H J 퓌르스테나우가 1930년 독일 카를스루에 시의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도 알았다. 독일말로 ‘리베스프로베(사랑의 시련)’라 일컬은 이 발레에는 분명히 ‘춘향’이란 부제가 붙어 있고 제1장 도령의 공부방과 월매의 집 마당, 제2장 춘향의 방, 제3장 관아(동헌)의 앞마당, 제4장 옥중의 춘향, 제5장 다시 관아의 앞마당 등 5장으로 구성돼 등장인물이나 줄거리가 우리의 춘향전과 거의 같다.
그에 비해 포킨이 안무한 ‘사랑의 시련’은 30분 정도의 단막 발레로 한국에선 구경하기도 힘든 원숭이의 군무로부터 시작돼 줄거리를 심하게 왜곡해서 우리에게는 당혹스러울 만큼 낯선 춘향으로 번안, 변형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原)춘향전에 충실한 퓌르스테나우 버전의 ‘사랑의 시련’은 내가 알기엔 1953년 독일의 바이로이트에서 공연되었을 뿐이다. 그 밖에 미국이나 유럽의 무대에 오른 ‘사랑의 시련’은 거의가 월매도 방자도 나오지 않고 변학도 대신 외국의 사신이 등장하는 포킨 버전의 ‘변형 춘향전’이다. 아마도 20세기 발레에 군림했던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포킨의 명성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느 것이건 좋다. 중요한 것은 ‘방황하는 화란인’처럼 해외에서만 떠돌다 행려병자가 될지도 모를 ‘춘향’을 그녀의 고국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내 40년 동안의 이 간절한 소망을 이번에 동아일보와 국립 발레단이 포킨 버전의 ‘사랑의 시련’을 공연함으로써 성사시켰다.
포킨이 어떤 예술가인지는 이번 공연의 첫 프로그램으로 쇼팽의 음악에 의한 그의 안무 작품 ‘레 실피드(일명 ‘쇼피니아나’)’를 구경한 관객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마침내 만나게 된 ‘사랑의 시련’을 본 관객은 ‘아니, 저게 춘향이 맞아?’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서울 공연 계기로 힘찬 도약을
일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1930년대의 식민지 조선이 아닌, 정보화 시대의 작은 거인 대한민국이 이제야말로 춘향의 발레를 한국의 진경산수 속에서 원줄거리대로 증보(增補) 리메이크해서 다시 세계의 발레 무대에 올려놓아야 할 차례다. 제목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춘∼향’이 아니라 이미 포킨이 세계화시킨 ‘사랑의 시련’ 그대로 얹어…. 나는 그 성공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건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된 국립 발레단의 춤 실력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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