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명예의 전당’ 꿈 이룬 박세리

  • 입력 2007년 11월 15일 03시 02분


인간의 위대성이 발현되자면 타고나는 천성(天性)이 중요한지, 후천적인 훈육(訓育)이 중요한지는 영원한 논쟁거리다. 프로 골퍼 박세리(30)는 천성과 훈육이 절묘하게 결합된 골프 천재다. 아버지 박준철 씨가 딸의 천재성을 일찍 발견하고 스파르타식 훈련을 해 위대한 골퍼를 만들어 냈다. 1980년대 후반 박 씨가 하와이로 이민 갔을 때 초등학생 딸에게 골프채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놀랄 만큼 공을 잘 쳐 냈다.

▷스파르타식 훈련도 박 선수가 골프를 좋아했기에 가능했다. 중학생 때이던 겨울 어느 날 아버지가 딸을 골프 연습장에 데려다 주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깜빡 딸을 잊었다가 오전 4시경 퍼뜩 정신이 들어 연습장에 갔더니 박 선수가 그때까지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박 선수는 자녀를 성공시키고 싶은 욕심 많은 부모들에게 “무엇이든 스스로 좋아서 해야 한다. 부모가 억지로 시킨다고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해 여고 시절에 전국 대회를 석권하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진출했던 박 선수가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에 등극했다. 현역 골퍼 중 최연소 기록이다. 자랑스럽다. 필자는 2001년 박 선수를 인터뷰하면서 아버지 박 씨에게 “딸을 언제 결혼시킬 거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까지는 결혼을 미루기로 부녀 사이에 약속했다”고 답했다.

▷골프는 심리적 안정을 필요로 하는 민감한 운동이다. 미국 프로골퍼 중에는 마인드 컨트롤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선수가 많다. 불안하면 근육이 경직돼 부드럽고 정확한 샷이 나오기 어렵다. 박 선수가 2년여 동안 컷오프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필자는 젊고 건강한 박 선수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해야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지금, 박 선수의 첫 코치이자 ‘가장 존경하는 남자’인 아버지는 약속대로 다른 남자에게 딸을 넘겨줄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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