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김태환 지사의 ‘무죄’

  • 입력 2007년 11월 17일 03시 01분


4년 임기 중 1년 반만 채우고 그만둘 뻔했던 김태환 제주지사가 대법원 덕분에 살았다. 대법원이 그제 그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1, 2심에서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았다면 당선무효 기준(벌금 100만 원 이상의 유죄)을 훨씬 능가하는 액수인데 살아난 것이다. 엄격한 사법(司法)의 세계에서도 가끔 이런 기적 같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김 지사의 기사회생은 검찰이 선물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5·31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제주지검 검사 1명과 수사관 2명이 제주도청에 나타났다. 도지사 정책특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손에는 압수수색 영장이 들려 있었다. 이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비서실 직원이 하필 이때 김 지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기밀문서를 없애기 위해 상자에 담아 파쇄기가 있는 정책특보실로 들어가려다가 검찰팀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 속에는 김 지사의 선거운동에 공무원을 동원한다는 기획문서가 들어 있었다.

▷이 문서가 김 지사의 혐의를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물이 됐음은 물론이다. 1, 2심 판결은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정책특보실로 한정된 압수수색 영장으로 다른 사무실 문서를 가져간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모두 참여한 전원합의체는 이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며 2심인 광주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결정적인 증거라 하더라도 적법한 수집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면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번 판례 변경에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새 형사소송법이 크게 작용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명문 규정의 정신을 앞당겨 살린 것이다. 수사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검찰과 경찰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으나 이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다. 이제 수사 편의 위주의 사고방식과 관행은 설 땅이 없다. 법원이 검찰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 적법 절차(due process)가 철칙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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