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YS는 1996년 4월 총선 직전 이 씨를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으로 영입함으로써 그에게 정치의 길을 열어 준다. 이 씨가 거물 정치인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도 YS ‘덕분’이었다. 대선을 1년 이상 앞둔 그해 8월 당내에서 이른바 9룡(龍)의 대권 경쟁이 치열할 때 YS는 이 씨를 겨냥해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고 경고한다. 이에 이 씨는 몸을 낮추기는커녕 “비민주적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오히려 보스를 향해 항명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결정적 악연(惡緣)으로 바뀐 것은 1997년 10월경이다. 대선 후보인 이 씨는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반전(反轉) 카드로 빼든다. 그러나 도와줄 줄 알았던 YS는 ‘공정한 대선 관리’를 이유로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러 수사를 대선 이후로 연기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이 씨는 YS의 탈당을 요구하고, 심지어 이 씨 지지자들이 경북 포항시에서 YS 마스코트 화형식까지 하자 YS는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탈당한다. 이 씨는 그해 대선에서 낙선했다.
▷세 번째 대선에 출마한 이 후보를 향해 YS는 22일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과 후보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면서 “먼저 인간이 돼라”고 독설을 날렸다. 72세나 된 대통령 후보에게 ‘인간이 돼라’고 일갈한 전직 대통령 쪽에 더 문제가 있을까, 아니면 자신을 두 번이나 대선 후보로 만들어 준 당을 팽개친 뒤 그 당의 공식 후보를 폄훼하기에 바쁜 이 후보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일까.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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