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의 공간으로 온몸을 노출시키는 것은 숨쉬기를 위해서만은 아니란 생각을 합니다. 비약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바닷물 속에서 살도록 진화돼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헤엄치는 장소의 바깥에 펼쳐진 지리적 환경을 눈여겨보려는 속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우리는 자신이 사는 장소와 사회가 보여 주는 끊임없는 변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집니다. 호기심 따위는 거추장스럽거나 하찮다고 생각하는 삶, 그래서 정서적 진행이 멈추어 버린 삶, 혹은 남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는 데 부담을 느끼고 호젓한 곳에 몸을 숨기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삶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함부로 가타부타 예단하는 행위는 대단히 위험할뿐더러 나아가 폭력에 해당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삶의 보람과 명분과 활력과 품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의 체온을 그리워하며 그들과 부대끼고 어울려 살아가기를 소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비극이 되겠지요.
표범 한 마리가 발을 헛디뎠다가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바깥 세계에 있는 다른 동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해 작은 함정 속에서 본의 아니게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울부짖고 발버둥치고 흙벽을 헤집어도 보았지만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 징조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정 바깥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계절이 현란한 빛깔로 채색하며 스쳐 가고 있었습니다. 폐쇄적인 지하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표범은 바깥 세계가 보여 준 현란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구조되어 바깥 세계로 나간다 할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음을 깨닫게 되고, 지난날에는 익히 알았던 들꽃의 이름조차 깡그리 잊어버린 불길하고 무기력한 동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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