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헨리 하이드

  • 입력 2007년 12월 3일 03시 03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변호사, 그리고 32년의 공화당 하원의원(일리노이 주). 이력으로만 보면 ‘꼴통’ 보수주의자 같지만 미국의 헨리 존 하이드 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생명과 인권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강력한 낙태 반대론자였고, 공화당의 정강정책과는 달리 반자동 총기류 판매 금지법안을 지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 사상 처음 상임위를 통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도 그였다.

▷하이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처럼 민주당을 지지해 온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28세 되던 해 지지 정당을 공화당으로 바꾼 그는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 후보의 언론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그도 한때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 하원의장으로서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하던 그는 한 인터넷잡지가 자신의 과거 혼외정사를 폭로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그는 미 의회에서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을 지지해 준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2005년 9월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하려면 미국으로 보내라’는 서한을 보냈고, 지난해 방한했을 때는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찾아 헌화했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필리핀상륙작전에 참전했던 그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미국 속담에 ‘새 친구를 사귀더라도 옛 친구를 버리지 말라. 새 친구가 은(銀)이라면 옛 친구는 금(金)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가 방한 당시 한미동맹의 균열 조짐을 우려하며 한 말이다. 한미동맹에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반미 감정이며, 반미 감정을 악용하는 나라에 대한 지원은 미 국민이 원치 않을 것이라는 그의 충고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하원의 진정한 신사이자 적과 동지로부터 동시에 존경받은 인물’이란 평가를 받던 하이드 전 의원이 지난달 29일 영면했다. 향년 83세. 한국은 ‘금 같은 친구’ 하나를 잃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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