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2>크리스마스의 악몽

  • 입력 2007년 12월 11일 03시 01분


[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

《“아이는 세 번째 성냥을 그었다. 이번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앉아 있었다. 수많은 촛불이 푸른 가지 위에서 너울너울 타고 있었다. 신기한 것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었다. 아이는 그중에 가장 예쁘지 않은 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12월입니다.

눈이 내린 어느 밤입니다. 거리에서 경적 소리와 확성기 소리에 내내 시달리며 지친 몸. 집으로 들어오니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예쁜 책이 책상 위에서 저를 반깁니다. 간만에 책상 귀퉁이에 촛불 하나를 밝힙니다. 자, 이제 19세기 작가들이 쓴 유럽의 겨울 이야기로 가득한 책 속으로 들어가 볼 차례입니다.

책을 펼치니 이젠 거의 사어(死語)가 된 단어 하나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여인숙. 하지만 ‘규모가 작고 값이 싼 여관’이라는 사전적 설명이 책에서는 꽤나 무색합니다. 여기서 여인숙은 여행하는 자가 잠시 유숙하는 집이란 뜻이 어울립니다. 눈보라에 가야 할 길마저 끊어진 겨울밤을 상상해 봅시다. 주인장이 지펴 놓은 장작불 앞에서 어떤 여행객도 슬슬 이야기꾼이 되는 여인숙 말입니다.

그런데 그 ‘꾼’들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소설 ‘마지막 수업’과 ‘별’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라면 어떨까요? 혹시 ‘보물섬’을 쓴 로버트 스티븐슨은 어떤가요. 아니면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찰스 디킨스나 19세기 고딕소설과 근대 심리공포소설을 연결한 작가 셰리단 르 파누라면?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그런 상상을 충족시켜 주는 책입니다. 축복과 풍요를 떠올리게 하는 성탄절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책은 그런 선입견을 안팎으로 뒤흔듭니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 같은 기담들이 두런두런 시작되는 여인숙으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자, 이젠 폭설이 그쳐도 여인숙, 아니 책에서 빠져나오긴 힘듭니다. 이미 도데가 식탐 때문에 죽은 뒤 폐허로 바뀐 성당에서 300년 동안 자정 미사를 올리는 한 신부 이야기를 시작한 탓입니다. 구불구불한 두멧길을 걸어가는 노새의 방울소리와 겨울 밤 ‘추위로 선명해진 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빛을 발합니다.

디킨스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무람없이 펼치는 마법의 환영들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곧 사라져 갈 크리스마스트리여! 너의 가지들을 통해, 나를 사랑했지만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의 눈빛을 한 번 더 볼 수 있게 해다오!”

너무나 익숙하지만 새로이 다가오는 단편도 있습니다. ‘붉은 뺨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남의 집 처마 밑에 쓰러져 있는 성냥팔이 소녀. 바로 ‘동화의 왕’ 안데르센의 작품입니다.

“순간 성냥불이 꺼져버렸다. 크리스마스트리는 하늘로 올라가고, 달려 있던 수많은 촛불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성탄절 동안 잠시나마 온기를 전해 줬을, 소녀가 꼭 쥐고 있던 성냥 한 갑 같은 책입니다. 동그마니 쥐인 성냥갑 같은 이야기들이 당신의 크리스마스 속으로 살며시 다가옵니다. 그 온기를 잠시나마 느껴 보시길. 이야기 여인숙이 그렇게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찬규 시인 성균관대 인문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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