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시민들과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시프린스호의 시련을 이겨 내고 엑스포 개최를 성사시켰듯이 태안 앞바다의 재난도 그렇게 승화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믿으면서도 마음속엔 10년 묵은 체증 같은 게 계속 짓누른다.
사고가 난 7일 급히 현장에 도착한 민간 방제업체 전문가들은 해양경찰청이 구해 놓은 ‘장비’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14만 t짜리 유조선의 구멍을 막는 데 내놓은 배가 8.5t짜리 작은 어선이었다. 접근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바람이 불고 파도 높이가 4m나 되는 바다에서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모험이었다. 상상해 보라. 거친 바다의 깎아지른 절벽 아래 배를 대고 암벽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답답한 마음에 해양수산부의 지인(知人)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바다를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느냐고. “해경도 배를 급히 구할 수 없어 그랬겠지만, 우리도 그 얘기를 듣고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사고 원인도, 응급 대응의 실패 원인도 바다에 대한 무지(無知)에 있었다.
‘약무호남 시무조선(若無湖南 是無朝鮮·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은 이순신 장군의 이 말을 선거용으로 써먹고 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약무호남’은 우리 바다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가 응축돼 있는 말이다.
바다엔 바다의 시간과 운동법칙이 따로 있다. 물때, 그리고 조류와 해류다. 태안 현장에 내려가 있는 일선 기자들은 조류와 해류를 뒤섞어 사용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조석간만의 차로 만들어지는 게 조류라면, 해류는 바람이 만든다. 바다의 씨줄과 날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바다는 이 씨줄과 날줄의 교직(交織)이 어느 나라보다 복잡하다. 그 교직을 몰랐다면 명량대첩도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바다의 지혜를 잃었다. 분단으로 북쪽이 막혀 사실상 ‘섬나라’가 됐는데도 해양국가는 일본이나 영국을 가리키는 말쯤으로 여겼다. 어업일꾼을 ‘뱃놈’이라 부르고, 바닷가 사람들을 ‘갯가놈’이라고 멸시했다. 해운항만청 시절 인천항만청장을 지낸 간부가 목포에 부임해 “여긴 왜 인천처럼 갑문(閘門)이 없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갑문이 뭔지, 서해와 남해바다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항만 행정을 해 왔다. 그나마 ‘바다의 헌법’이라는 유엔해양법협약 제정에 자극받아 1996년 해양수산부를 신설한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차기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첫 회의를 태안 현장에서 했으면 한다. 그 자리에서 2010년 세계 10대 해양강국을 꿈꾸고, 조선업은 이미 세계 1위인 대한민국의 해양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했으면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지리지(地理誌)를 다시 쓴다는 각오로 말이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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