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이르러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른과 철부지의 역할이나 구분조차 희미해져서 혼돈이 누적되지요. 이런 것의 시험이나 공격에 무관심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고결한 삶의 정절을 지켜 나가기가 어렵게 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제대로 구성된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가지고 살기는커녕 우리의 삶은 숙연한 본질에 접근해 보기 전에 누더기 인생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은 그런 우리의 삶의 모습을 매우 명징하게 표현합니다. 고전적인 의상을 얌전하게 차려입은 한 여성이 아들인 듯한 소년과 애완견을 데리고 이웃을 방문했습니다. 뒷모습만을 보여 주는 소녀의 아버지가 사귀는 여성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림 속의 여러 가지 구성이 많은 모순을 담고 있습니다. 아래는 작업화가 분명한데 불끈 솟아오른 것은 색연필입니다. 음료수병 부리에 꽂혀 있는 수도꼭지와 책장의 칸막이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운차게 날아가는 갈매기가 있습니다. 액자 밖으로 수증기를 내뿜는 초현실적인 기차와 책장의 안쪽 칸막이에 설치된 창으로 바라보이는 바깥 풍경도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상식적인 사고력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정경을 담고 있습니다. 방문한 손님의 화려한 의상과는 대조적인, 어두운 거실과 의상도 균형을 깨뜨리는 부분입니다. 그림이 지독한 모순과 혼돈 속을 능청스럽게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이 점에 동의한다면 그림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하겠습니다. 그림 속에 나타난 사람의 관계를 이러저러하다고 예단한 것도 고정관념이나 상식적인 것에만 갇혀 사는 나의 모순된 분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린 작가처럼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만이 고결한 삶에 접근할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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