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북한 허브論

  • 입력 2007년 12월 15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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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자들은 남한 사람들보다 서너 배는 더 먹는다. 일감이 없어 보름 정도 쉬게 했다가 다시 부르면 깡마른 모습으로 나타나 식사시간이면 마구 먹어 댄다. 그러고 나면 부은 듯이 살이 찐다. 식당 일을 하는 처녀들도 처음엔 까만 얼굴에 비쩍 마른 모습이다가 하루 세 끼를 제대로 먹고서는 한 달이 못 돼 신수가 훤해진다.’ 2003년부터 1년 반 동안 함경도 신포 경수로 현장에서 북한 동포들을 지켜본 우리 정부 관리의 경험담이다.

▷개성공단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남측 직원들은 신분증을 갱신해 주기 위해 북한 노동자들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놀란다. 처음엔 시커멓고 윤기 없던 얼굴이 하얗게 바뀌고 살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남측 업체가 주는 밥을 실컷 먹고 몇 달 만에 뽀얗게 피어나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플 때도 많다고 한다. 그런 북한이 최근 희미하게나마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15년 만에 11월 30일부터 이틀간 개최한 전국 지식인대회에서 고(故) 김일성 주석의 출생 100돌이 되는 2012년을 물질적 측면에서 강국의 면모를 갖추는 시한으로 정했다. 대회에서는 “오늘날 조선의 절박한 요구는 경제와 인민생활을 하루빨리 치켜세우는 것”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노동당도 얼마 전 간부들에게 “앞으로는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동북아의 무역 허브(중심지)’ 운운하는 것은 우습다. 최근 북한의 공식 웹사이트(www.korea-dpr.com)는 낮은 임금과 질 높은 노동력 등을 내세워 외국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하면서 “우리는 장차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허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북한은 임금 경쟁력은 있다.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 월급이 60달러도 안 되고 그나마 본인이 다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프라가 열악하고, 체제의 폐쇄성에서 오는 불편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외국인이라고 사정을 모를까. 지금 북한 당국에 필요한 것은 허장성세가 아니라 굶주리는 주민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자세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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