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쇼핑과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 이즈음이면 사람들이 열광하는 품목입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아마도, 그게 크리스마스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와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저 오랜 관습으로 자리 잡은 소비 풍속이 돼 버린 듯합니다.
호두까기 인형 발레극은 그 시간 배경이 성탄 전야이고, 주인공 호두까기 인형이 그날의 선물이라는 것 외에는 크리스마스와의 관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걸 제대로 알려면 완역판 ‘호두까기 인형’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이 은혜로운 손길로 그 모습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고 있기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그 어떤 선물보다 더없이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잘 알았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환상과 현실의 결합, 죽음과 부활, 희생과 구원, 굳건한 믿음, 찬란한 광휘 속의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원작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극과는 좀 다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의 유래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마법에 걸려 흉측하게 변한 공주를 한 무구한 젊은이가 구해 주고 대신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호두까기 인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리는 그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인형들과 사악한 쥐들 사이의 한밤중 전투도 실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마리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성적인 어른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놀이친구인 오빠는 믿었다 놀렸다 합니다. 심지어는 그 이야기를 들려준 대부조차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허튼 소리”라며 일축합니다.
그러나 비웃음과 꾸지람에도 마리는 한결같은 믿음을 보내고, 그것은 결국 그녀의 믿음 혹은 환상을 현실로 이루어냅니다. 신비로운 마지팬 나라를 보여 준 호두까기 인형이 살아 있는 젊은이가 되어 나타나 마리에게 청혼을 하고, 그와 결혼한 “마리는 지금도 그 나라의 왕비”이거든요. “그런 것을 볼 줄 아는 눈만 있다면 온갖 멋지고 근사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는 나라” 말이에요. 크리스마스만이 아니라 온 생애를 통해 우리가 구하는 진실과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이 호두까기 인형의 매력일 것입니다.
김서정 동화작가 동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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