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미국 유학 열풍에 휩싸여 있다. 미국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이제 유학은 초등학교까지 내려간다. 원정출산이 유행이라니 이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유학하는 셈이다. 미국 유학파가 국내의 정계 관계 재계에서 지배 엘리트로 터를 잡은 지 오래다.
왜 미국인가. 미국에도 인증을 받지 못한, 대학 아닌 대학이 있다. 소위 가짜 박사의 진원지이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름 없는 대학도 많다. 하지만 시장원리에 입각한 대학의 자율성이 하버드대와 같은 세계 초일류 대학을 만든다.
예전엔 입시철이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서울대 합격생이 뉴스거리였다. 이제 그 자리는 미국의 유명 대학 입학생이 차지한다. 뛰어난 인재가 국내 대학 진학을 마다하고 외국으로 빠져나가도 위정자나 교육 당국자는 여전히 우리 대학만을 옥죈다. 반면에 과학영재의 국내 귀환은 갈수록 정체된다. 서울대 공대는 금년에 단 한 명의 교수도 채용하지 못했다.
백년대계가 아니라 한두 해도 못 가는 교육정책에 실망한 나머지 교육인적자원부 폐지론까지 나온다. 제주와 인천 청라지구에 외국 대학을 유치할 모양이다. 이곳에 현재와 같은 입시 제도를 강요하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면 국내판 외국 대학으로의 엑소더스가 현실화될 것이다.
교육 개혁은 더 기다릴 시간도 선택의 여지도 없다. 첫째, 열심히 노력한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 값비싼 해외 유학은 고사하고 학원 갈 돈조차 없는 가난한 천재의 수학 기회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입시제도로는 불가능하다. 3불 정책, 수능 등급제와 같은 하향평준화 정책은 철폐해야 한다. 패자부활전도 필요하다. 대학입시에서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소통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둘째, 글로벌시대의 무한경쟁에 노출된 대학은 자치와 자율이 생명이다. 대학은 관리 대상의 미숙아가 아니다. 우리도 이제 세계 초일류 대학을 가질 때가 됐다. 대학 간 차이를 인정해 세계적인 선도 대학을 육성해야 한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은 자율과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해외 유학파의 유치가 아니라 유학이 필요 없는 대학이 필요하다.
셋째,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국 100여 개 대학이 각기 100여 개 학과를 거느리는 한 전문화 특성화는 불가능하다. 경상대 농생명학부 출신의 토종박사가 외국 유명 대학에 발탁되지 않았는가.
넷째, 대학 재정의 획기적 확충이 필요하다. 대학 총장의 최대 덕목이 얼마나 많은 발전기금을 확충하느냐에 좌우될 정도로 대학의 재정은 열악하다. 세계 50위권 대학으로 성장한 서울대의 1년 세출예산은 겨우 4000억 원 남짓이다. 중소기업 규모도 못 될 뿐 아니라 세계 유수 대학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기부문화가 대학으로 확산되도록 특단의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유일한 자원이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은 우골탑이 아니라 상아탑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치맛바람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신바람 공부의 원조자로 승화돼야 한다.
한 나라의 장래는 뛰어난 인재에게 의탁한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프랑스의 그랑제콜, 영국의 옥스브리지 출신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심축이다. 서울대 폐교론까지 거론하던 참여정부의 실패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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