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통용되는 공공질서의 수립과정은 기존에 하던 방식과 매우 다르다. 인터넷에서의 의사결정은 하의상달(Bottom up) 개방(Open) 참여(Participation)를 특징으로 한다. 누구나 참여하도록 개방하고 동등한 자격을 주며, 참여자가 자유롭게 제기한 주제가 하의상달 형식의 토론을 거쳐 질서를 갖추는 과정이 인터넷 거버넌스이다.
이런 의사결정과정은 인터넷이 컴퓨터 연구자 간의 공동연구를 위한 네트워크로 출발한 역사에 기인한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조교수였던 빈트 서프 박사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공개해 많은 학자와 학생이 사용토록 한 뒤 이들의 조언을 받아 수정하면서 소프트웨어 묶음을 만들었다. 이것이 교육 연구계에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인터넷이 탄생했다.
웹은 스위스 입자 물리연구소에서 탄생해 공개되고 누리꾼의 자발적인 참여로 개량되면서 오늘날 전자 상거래의 기반이 됐다. 이후 웹 컨소시엄이 누리꾼의 주도로 구성돼 인터넷을 이용하는 규범을 이끌고 있다. 인터넷의 모든 공공질서가 이런 과정을 거쳐 수립돼야 한다는 것이 누리꾼이 이해하는 인터넷 문화이고 인터넷 거버넌스이다.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은 인터넷의 국제적 공공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인터넷 스타일의 의사결정과정을 도입한 토론장이다. 정부대표 기업 시민단체 전문가 등 누구나 원하면 참여해 자유롭게 발언한다. 또 현장에서 블로그를 이용해 전 세계에 방송하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접수한다. 유엔이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을까? 대답은 자명하다. 인터넷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터넷 스타일의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에서 안보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가동되고 총회에서 의결안이 채택된 뒤 국제질서가 생긴다. 그러나 스팸메일 문제는 정부 대표가 모여 결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전문가가 기술적 표준에 합의하고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무엇보다 누리꾼이 공감대를 형성해 따라야 한다.
실제 세계에서 존중받는 정부의 힘은 국경이 없는 사이버 세계에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엔이 인터넷 이용에 관련된 국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생소하지만 인터넷 거버넌스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세계가 인터넷 시대로 변한 지 오래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강국으로 세계적인 최첨단 인프라를 갖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시대로 향한 변화의 물결에 성공적으로 적응함으로써 세계적 강국으로 도약하려고 한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악플, 스팸메일, 지적재산권 도용,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가 불거지므로 인터넷 이용과 관련돼 바람직한 규범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정부(Government) 중심 의사 결정이 아니라 개방과 참여가 보장된 인터넷 거버넌스 형태의 의사결정과정을 수립하고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박재천 인하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연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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