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획에 관한 에피소드 중 압권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제공했다. 그는 2005년 1월 “경제성을 기준으로 사업 우선순위를 정하겠다”고 했다. 경부고속철도도 큰 적자를 내는 마당에 이보다 경제성이 훨씬 낮은 호남고속철도 건설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2월엔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단순 논리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실세(實勢) 총리’가 눈도 좋아 사안을 제대로 본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해 11월 15일 말을 바꿔 국회에서 “조기 착공하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배후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그 나흘 전 “전남 도민의 숙원사업인 호남고속철도 건설은 인구나 경제성과 같은 기존의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호남의 한 언론이 ‘(열린우리당에) 등 돌린 호남 민심 달래기’라고 해석한 발언이었다.
건설교통부도 재빠르게 ‘경제적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비용편익분석비율이 0.39로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받는 1.0에 훨씬 못 미쳤다거나 28년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란 분석 자료는 영향력을 잃어 갔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도심 재개발 활성화 계획에 반대해 놓고 정권교체를 앞둔 요즘에야 “청와대 뜻이었을 뿐 우리 의지는 아니었다”고 표변하는 바로 그 건교부다.
호남고속철도는 2009년 착공 예정으로 현재 노선에 관한 타당성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번 대선에선 여기에 누가 무엇을 덧그렸을까. 거의 모든 후보가 호남을 찾아 ‘조기 완공’을 공약했다. 이명박 후보도 “임기 내 완공”을 외쳤다. 2017년 완공 계획을 4년가량 앞당기겠다는 주장이다.
누군가 호남고속철도도 놓아 주고 수조 원짜리 다른 국책사업들도 뚝딱 해 준다면야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역 숙원사업’이라는 이유로 타당성이 낮은 사업을 집중 지원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이 전 총리가 한때 옳게 지적했듯 ‘15조 원가량인 호남고속철도 사업비를 배정하려면 호남의 다른 사업에 들어갈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할 사람이 이젠 없는가.
이 당선자는 경제대통령이란 브랜드에 걸맞게 ‘경제 논리’를 자주 강조한다. 호남 유세 중에는 “이번 대선에서 호남 상공을 덮고 있는 정치 논리가 걷히고 경제 논리가 비추길 바란다”고도 했다. 설마 ‘경제대통령인 내가 펼치는 것이 경제 논리’라는 생각은 아니길 바란다.
경제 논리라는 말은 중의적(重意的)이다. 자본가의 기득권 옹호, 무분별한 단기적 이익 추구, 휴머니즘은 찾아볼 수 없는 각박한 경쟁을 말할 때, 심지어 범법 기업인을 풀어 주는 핑계로 ‘경제 논리’라는 소리를 한다. 지나치게 시장 논리만 강조한다는 뜻도 있다.
그러나 ‘정치 논리’와 함께 사용되는 ‘경제 논리’라는 말에는 합리성, 공정성, 효율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주로 정치적 판단에 따른 노 정부의 균형발전정책, 부동산정책 등을 재검토해야 하는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이런 의미의 경제 논리다. 이명박 정부의 새 정책구상들도 이 기준에 다시 맞춰 봐야 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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