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외 문단에서 시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 외국의 서점 진열대에서 시집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시집을 내더라도 대개 자비(自費) 출판으로 소수 동호인끼리 즐기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의 느린 속도감과 운율이 바쁜 현대인에게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적으로 시의 생명력이 잘 유지돼 ‘시의 왕국’ ‘시의 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었다. 1990년대만 해도 베스트셀러 시집은 수십만 부씩 팔려나가 외국 시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국 현대시의 효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된다. 시의 역사에 의미 있는 해를 맞은 거다. 하지만 시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시집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우리에게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낙담할 단계는 아니다. 주변에 시를 쓰겠다는 사람이 꽤 있는 것만 봐도 한국인의 시심(詩心)이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인도의 간디는 “시인은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선(善)한 마음을 능히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어느 나라보다 시를 사랑하는 한국의 시인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선의 학자 서유구(徐有구)는 “학문을 오래 쌓고 생각을 깊이 해서 콸콸 솟아 넘친 연후에 마침내 그것을 꺼내 문장을 지어야 항상 촉촉하고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쉽게 시류(時流)에 흔들리고 가볍게 시를 지어내는 시인이라면 한국인이 읽고 싶어 하는 시가 어떤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써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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