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포커스/프랜시스 후쿠야마]부토의 민주화論 죽지 않았다

  • 입력 2008년 1월 8일 02시 52분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암살 소식을 듣고 나는 크게 상심했다. 나는 하버드대에서 중동 정치학 강의를 들을 당시 대학생이었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처음 만났다. 그 뒤에도 인도의 델리에서 2003년 12월과 2006년 3월 부토 전 총리를 한 번씩 만났다.

2006년 3월 인도 주간지 ‘인디아 투데이’가 주최한 콘퍼런스에는 부토 전 총리와 함께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도 참석했다. 부토 전 총리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부토 전 총리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알 카에다 및 테러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성토하며 이슬람극단주의자들에게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인도와의 국경 문제에 더 유연하게 대처하거나 국경을 개방하고, 파키스탄-인도 간 경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이 테러와 연계돼 있다는 다른 국가들의 시각에 당황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부토 전 총리는 미국이 계속해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지지해 주기를 부탁했으며, 파키스탄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의 안보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미국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부토 전 총리는 나와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가 쓴 책을 읽으면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민주주의, 인권 등 훌륭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토 전 총리의 연설은 힘이 넘쳤으며 그는 난감한 질문에도 잘 대처했다. 2003년의 콘퍼런스를 회상하면 당시 인도의 청중은 종종 적대적이었다. 전직 인도 군 참모총장은 “총리로 재직할 당시 카슈미르에서 일어난 테러를 지원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다짐했다. 청중은 그 같은 다짐에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총리 재직 당시 파키스탄 정보국(ISI)을 충분히 장악하지 못했으며, 카슈미르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 작전은 ISI의 책임이라는 것이 사실이란 점을 설명했다. 콘퍼런스 기간 중 부토 전 총리는 비판적이었던 인도 청중을 결국 자기편으로 돌려놓았다. 주최 측도 인도에 와서 연설한 그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부토 전 총리는 분명 파키스탄으로 귀국하면서 많은 적을 만들었고 그 결과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부토가 귀국한다고 파키스탄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살아날 수 있었겠느냐’는 비판은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물론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의 다른 민주적 정치가들과 같은 엘리트 출신이었다. 파키스탄 엘리트들은 부정부패로 민주주의에 오점을 남겼으며 결국 무샤라프가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 점을 인정하더라도 파키스탄 전체를 위해서나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나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토 전 총리의 생각은 전적으로 옳았다고 나는 믿는다. 파키스탄의 법치주의를 손상시킨 책임은 부토 전 총리가 아니라 무샤라프 대통령이 져야 한다. ISI를 통제하지 못한 것도,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나라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도 모두 무샤라프 대통령의 잘못이다.

총선 유세를 벌이던 도중 부토 전 총리가 살해되면서 파키스탄 정국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부토 전 총리의 피살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그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 누가 합법적인 지도자로 떠오를 것인지는 짐작하기 힘든 일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정치경제학자 ‘역사의 종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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