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고려대 총장에 선임된 이기수(63·법학) 신임 총장은 4차례 도전한 뒤 총장직에 올라서인지 준비된 듯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는 총장추천위원회 투표에서는 2위를 차지했지만 법인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돼 앞으로 그가 어떤 수완을 보여 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월 1일 취임하는 이 총장을 19일 만나 ‘민족혼을 담은 세계적 핵심 대학을 만들겠다’는 학교 발전 청사진과 전략을 들어 봤다.
“처음 총장 선거에 나섰을 때는 국내 우수 대학을 만들겠다고 했고, 2006년 선거에서는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2년이 지나고 보니 시대가 또 변했더군요. 국제화와 추진력, 창의력이 중요한 때가 됐습니다.”
이 총장은 GPS(Global Positioning Supervisor)형 총장이 되어 국제화의 조타수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공약 중에서도 국제화 전략이 눈에 띕니다.
“외국인 학생을 국내로 적극 유치하는 것과 함께 아웃바운드(outbound) 국제화를 통해 해외로 직접 뛰어드는 국제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전임 총장 시절부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와 영국 런던대에 고려대 기숙사를 짓는 등 국제화의 기틀을 닦고 있습니다. 이젠 대학이 직접 밖으로 나갈 때입니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건립 계획부터 설명했다. 2010년까지 500억 원을 들여 현지에 건물을 마련해 한국학 등 기본적인 학과부터 개설하고, 2012년까지 단독 용지를 확보해 명실상부한 고려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를 정착시킨다는 구상이다.
고려대 학생과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현지 학생들은 1년씩 교환학생으로 교류하고, 인근 명문대의 우수 교수들을 초빙해 영어 강의나 외국어 교육도 자연스럽게 해결하겠다는 것. 재원은 미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고려대 발전재단을 통해 상당 부분 현지 기부금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그는 “임기 4년 동안 고려대를 세계 100위권 대학에 안정적으로 진입시키는 한편 2030년까지 세계 50대 대학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당발’로 유명한데 4년간 5000억 원의 기부금 모금 공약이 가능할까요.
“사실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겸손하게’ 줄여 발표한 거예요. 올해 1500억 원을 모을 겁니다. 미국 하버드대나 예일대는 발전기금을 통해 등록금 부담을 계속 낮추고 교수들의 연구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죠. 우리도 등록금 의존율을 현재 50%에서 35%로 낮추고, 장학생 수뿐만 아니라 지원 액수도 늘려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할 계획입니다.”
그는 해외모금 전략기획팀을 구성하고 2000억 원 규모의 ‘고려대 펀드’를 조성하는 등 기부금 모금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기업, 교포, 졸업생 등 모금 경로를 다각화하고 소액기부, 무기명기부 등 ‘숨은 기부자’를 적극 발굴하는 한편 정부의 사립대 지원 예산도 적극 유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교수들의 역할과 처우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다.
“연구를 잘하는 교수가 있고 강의를 더 잘하는 교수도 있죠. 어느 연배가 되면 연구보다는 경륜 있는 강의로 성과를 낼 수도 있어요. 교수들이 강의, 연구, 사회공헌 등 자신 있는 것을 선택해 집중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가 연구전담 교수와 강의전담 교수를 분리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 책임강의 시간이 주 6시간인데, 세계적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계속 발표하는 등 연구 성과가 좋으면 강의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것. 좋은 성과를 내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09년에 문을 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법대 4년 과정을 로스쿨에서 3년간 소화하려면 지옥처럼 가르치고 공부해야 합니다. 국제통상, 국제송무를 특성화하기 위해 시설은 물론 교수와 교육과정 개발에도 계속 투자할 것입니다.”
그는 “로스쿨 총정원을 2000명으로 제한하고 학교별 정원을 150명 이하로 묶은 것은 국민에게 필요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부족하다”며 “고려대가 우수한 법조인 배출을 통해 민주주의 토대 마련에 기여한 것을 감안하면 최고의 정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가 대학 자율화를 강조하는데….
“일단 교육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평준화 때문에 고교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는데 3불 정책은 조정될 수밖에 없어요. 자율권이 주어지면 대학도 책임 있게 협력할 것입니다.” 그는 가칭 ‘중고교 정상화를 위한 입시정책팀(TF)’을 만들어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 같은 다양한 제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여입학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사립학교에 절실한 제도이지만 당장 적용하기는 어려워요. 돈 내고 학교에 들어간다는 개념이 아니라 학교에 기여를 하고 한 세대 정도 지난 뒤에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화합’을 강조하는 그는 2006년 고려대생 출교 사태에 대해 “사제 간의 관계는 특별한 것인 만큼 적극 나서서 대화할 계획”이라며 “학생들이 당시 보직교수들에게 먼저 사죄한다면 스승 쪽에서 교육적으로 용서하고 끌어안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기수 총장:
1945년 경남 하동 출생
1964년 부산 동아고 졸업
1969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83년 독일 튀빙겐대 법학박사
1984년 고려대 법대 교수
1994년 고려대 기획처장
1996∼1999년 국가경쟁력연구원 원장
1998년 고려대 법대 학장, 한국독일학회 부회장 및 회장
2006년 1월∼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한국중재학회 회장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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