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18>내일을 여는 집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08분


《“낮은 노랫소리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물결쳤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 되어 우리 나선다. 캄캄한 새벽하늘에 펄럭이는 깃발들만 소리 없는 함성으로 이들의 출정을 배웅했다.”(단편 ‘새벽 출정’ 중에서)》

- 최완규 드라마 작가 추천

지도자가 보듬어야 할 고단한 노동자의 삶

소설가 방현석(47) 씨가 첫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을 낸 것은 1991년이다. 그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가 작가가 됐다. 그런 그의 경험이 소설에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의 이야기다. 같은 이름의 노동자들이 책에 실린 작품들 곳곳에 등장해 연작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다섯 편의 중편 모두가 1980년대만이 가질 수 있었던 뜨거움으로 가득하다.

책의 첫머리에 놓이는 작품이자 방 씨의 등단작인 ‘내딛는 첫발은’은 사측과 대치 중인 한 공장의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잇단 탈퇴로 흔들리는 장면을 그렸다. 위원장과 사무장 등이 구속되고, 조직부장이 해고되면서 노조는 밀릴 대로 밀렸다.

처음 250명이었던 조합원은 현재 60명. 집회를 결행하기로 한 날에 하필이면 비가 주룩주룩 내려 더욱 암울하다. 노조를 탈퇴한 노동자들에게 동참을 촉구하지만 거부당하고, 바리케이드를 치고자 망치와 철사를 준비하겠다던 동료는 소식이 없다.

이 소설은 노조를 빠져나갔던 노동자들이 싸움의 현장에서 사측의 횡포를 목도하고 하나 둘 결의를 다지면서 동참하는 것으로 마친다. ‘내딛는…’뿐 아니라 ‘새벽 출정’ ‘지옥선의 사람들’ 등도 노동자들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투쟁에 나서는 것으로 맺어진다. 그 결론이 어떠할지 작품을 따라 읽는 독자들은 알아차린다. 평론가 김재용 씨가 짚듯 그의 작품이 그리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패배, 엄밀하게 말해 패배 직전”이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이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작가는 독자를 설득하려고 하는 대신 현장 노동자들의 핍진한 삶,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을 현장의 삶을 묘사함으로써 독자가 공감하도록 이끈다. 배급된 식사를 갖고 노조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장면, 부모의 애걸에 어깨를 떨어뜨리고 노조에서 등을 돌리는 장면 등. ‘바깥’뿐 아니라 ‘안’으로도 고단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그렸다. 작품 대부분에서 누구도 두드러지게 주인공의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역으로 모든 사람이 주인공임을 드러낸다.

이 책을 추천한 드라마 작가 최완규 씨는 “대통령 당선인은 인생 스토리가 극적인 사람이며, 당선 요인에는 그런 극적인 성공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최 씨는 “그러나 그 성공 신화 이면에는 그 과정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며 이 소설집에는 그런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면서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강조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넉넉히 이해하는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 방 씨는 최근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에서 살아가기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소재는 옮겨 갔지만 사회적 소수에 대한 그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망은 ‘내일을 여는 집’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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