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봇대’뿐 아니라 ‘현판’도 제거해야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08분


경찰청은 청장이 바뀔 때마다 새 청장의 지휘 방침을 적은 현판을 새로 만들어 전국 2300여 경찰관서에 내걸곤 했다. 최근 3대(代) 청장의 지휘 방침은 최기문 청장(2003년)이 ‘함께하는 치안, 편안한 나라’, 허준영 청장(2005년)이 ‘최상의 치안 서비스를 위해’, 이택순 청장(2006년)이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이들 3인의 지휘 방침 현판을 만드는 데 국민 세금 14억3752만 원이 들어갔다. 경찰이 국민에게 이런 부담을 지우면서 현판을 바꾼 결과로 치안 상황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보기엔 전시행정이고 혈세 낭비일 뿐이다. 누가 경찰청장이 되건 경찰법 제3조에 명시된 국가경찰의 임무가 바뀌는 건 아니다.

구호성(口號性) 지휘 방침과 전시성(展示性) 현판이 경찰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기관들이 툭하면 사무실 배치를 바꾸고 집기를 교체하는 것도 낭비 요소가 있다. 전국 곳곳의 호화 관사(官舍) 시비도 심심찮다. 이런 것들은 1000억 또는 조 단위의 예산 낭비 사례에 비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길지 모르지만, 작은 오남용도 쌓이면 국민의 세금고(苦)를 가중시킨다.

혈세가 새는 작은 구멍부터 잘 막아야 큰 구멍도 막을 수 있다. 대규모 예산 사업은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지만 작은 규모의 씀씀이는 그냥 넘어가기 쉽다. 1, 2년 만에 바뀌는 현판처럼 꼼꼼히 살펴보면 알게 모르게 축내는 수억, 수천만 원의 예산 낭비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15개 부처의 103개 일자리 창출 사업, 전국적인 균형발전사업 등 잘못하면 수조 원이 새나갈 수 있는 큰 구멍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연간 20조 원의 예산 절감을 다짐했다. 가능하다고 본다. 새 정부가 전봇대로 상징되는 규제의 개혁과 현판으로 상징되는 세금 낭비의 제거만 확실한 성과를 거둬도 반(半)은 성공한 정부가 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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