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가구(家具) 특소세

  • 입력 2008년 2월 6일 03시 01분


10년 전, 외환위기 직후엔 소비 양극화가 지금보다 심했다. 구두, 핸드백, 심지어 속옷까지 명품이라면 더 잘 팔렸다. 서울 강남의 건축자재전문점도 고급 욕실을 꾸며 달라는 주문을 한 달에 10여 건 받았다고 한다. 2000만 원짜리 이탈리아산 거품욕조, 3000만 원짜리 원적외선 사우나 부스에 200만 원짜리 금도금 수도꼭지도 등장했다. 수입 장롱은 3000만 원, 소파는 1500만 원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었지만 한때 공급 물량이 달리기도 했다.

▷이런 고가 수입품과 겨룰 국산 가구는 없는가. 특별소비세 통계로 보자면 ‘거의 없다’가 정답이다. 가구 특소세는 제조업체 반출가격이 1개에 500만 원, 또는 1조(세트)에 800만 원을 넘는 고급 가구에 기준 초과금액의 20%가 부과된다. 2001∼2005년 5년간 겨우 7500만 원, 연평균 1500만 원이 걷혔을 뿐이니 700만 원짜리 40개도 안 된다. 그렇지만 이 세금의 ‘나쁜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내 가구업계는 특소세를 피하려고 500만 원 이하의 물품 위주로 생산하게 되고 기술개발도 꺼린다.

▷그렇다고 고급 가구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고가 수입품이 국산을 대신한다. 고가 수입품의 경우 통관가격이 한 세트에 800만 원이 넘는데도 식탁과 의자를 따로 수입하여 세금을 피한 뒤 세트로 진열해 파는 편법이 통했다. 한국가구공업협동조합(회장 최창환)은 세계적으로 드문 가구 특소세의 폐지를 계속 건의해 왔지만 정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국내의 고급 가구 쪽은 몇 년 전에 다 죽었다”고 최 회장은 말한다. 재정경제부는 “5월경 특소세를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 여유로운 정부다.

▷가구업계의 요즘 관심은 원부자재 관세다. 원목을 생산하는 나라에서 만든 완제품 가구는 무관세로 국내에 수입된다. 그러나 국내 업체는 8%의 관세를 물고 수입한 원목으로 가구를 만들어야 하니 가격경쟁력에서 열세다. 업계는 “일정한 수입물량까지는 관세를 감면해주는 할당관세라도 해 달라”고 건의 중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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