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005년 3월 “의무교육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지 않고 특정인에게 징수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위헌결정이 난 학교용지부담금을 돌려줄 때 이자도 함께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국회는 지금까지 거둬들인 학교용지부담금을 다 돌려주는 내용의 학교용지부담금 환급특별법을 제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환급의무 주체를 지자체가 아닌 중앙정부로 수정한 것이다.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이 지역주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이런 법률을 통과시킨 것으로 보인다. 명백히 지자체 소관인 학교용지 매입비용을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에게 슬쩍 떠넘기는 것은 법의 안정성이나 형평성에 반한다. 이웃집에 도둑이 들었으니 마을 전체가 변상하란 얘기나 다름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환급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그래서 타당하다.
▷지자체들은 청사, 사택, 스포츠시설, 문화센터 등을 호화판으로 짓는 데는 혈세인 예산을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공부할 학교용지 매입비용을 아파트 입주자에게 전가한 것은 잘못된 조세편의주의 행태이자 염치없는 짓이다. 또 환급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기는 것은 국가재정 운용에 큰 차질을 초래할 뿐 아니라 일반 납세자를 모독하는 행위다. 유사한 소급입법 사례가 늘어날 경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도 걱정스럽다. 이번 총선에선 제발 자질과 입법 능력이 있는 국회의원이 많이 나왔으면 싶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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